[인더스트리뉴스 최정훈 기자] 신성장 분야로 경제 활로를 찾겠다는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들의 스타트업들은 떡잎부터 다른 면모를 보이며 승승장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ICT, 헬스케어 등 유망 분야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판을 열어젖힐 버팀목인 실질적인 기술금융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대한상의는 ‘역동적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창업) 생태계가 외형에 비해 질적 성장이 미진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2016년~2020년) 벤처투자 금액은 2조1,503억원에서 4조3,045억원으로 100.2% 증가했고, 투자 건수는 2,361건에서 4,231건으로 79.2%, 피투자기업 수는 1,191개에서 2,130개로 78.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에 비해 스타트업 1~5년차 생존율 차이 면에서 약 15%p 낮았다. 기업 5년차 생존율은 29.2%로, 설립 5년 안에 2/3 이상의 기업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무대로 올라타는 기업도 저조한 수준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스타트업 기업정보 데이터베이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에서 2019년까지 약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AI, IT 기업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나 미국, 일본 기업의 수가 더 많고, 펀딩액 규모에서 큰 차이가 났다. 글로벌 스타트업은 헬스케어 분야가 두드러지는데 반해 국내 스타트업은 디바이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나 펀딩액 규모는 최상위 기업 대비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주목 받을 수 있는 기술력 있는 기업 육성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며 “IT, 헬스케어 분야에 기업의 적극적인 스케일업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상황은 자본 역할이 미약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한국의 벤처투자 패턴 추이를 보면, 비교적 회수가 용이한 우선주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면서 “보통주의 경우 IPO·M&A가 되지 않는 이상 원금 회수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스타트업은 여러모로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있다. 우선 ‘초기자금 부족’이다. 스타트업은 성장의 단계에 맞는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초기단계의 Seed-Money(엔젤투자·벤처캐피탈)가 관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벤처투자가 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과 달리 투자금의 절반 이상이 중간·후기단계에 몰려있다.
경직된 회수시장으로 스타트업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대한상의는 우리나라 회수시장은 경직되어 있어 신규 투자 유입·활성화가 저해되며, 특히 M&A 비중은 미국의 45%에 비해 우리나라는 약 1%에 불과해 시장에서 역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이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M&A 부정적 인식, 소유와 경영이 불확실한 기업지배구조, 중소기업의 회계자료 불신 등 사회·구조적 문제점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했다.
녹록치 않은 여건에서 스타트업들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결국 자본의 역할에 달렸다. 특히, 혁신은 연구개발에서 사업화에 안착시키기까지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단번에 J곡선을 그릴 스타트업 발굴에 혈안이 된 모험자본 역할을 대신할 안정적인 공공금융장치의 역할이 관건이다.
통상 금융이 신용평가를 통해 기존 재무능력으로 채무 상환을 판단하는 반면, 평가를 통해 미래 가치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기술금융에서는 신뢰성이 중요한 요소이다. 기술금융은 개발이 진전될수록 진화와 다변화를 거듭하는 기술사업화 과정을 충분히 반영한 기술평가 모델과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산업연구원 ‘혁신성장을 위한 기술금융의 역할’에 따르면, 한국과 유사한 위상의 국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리스크가 큰 기술금융 특성상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가 가장 큰 이슈이며, 기술평가는 이에 대한 중요한 해답임에도 불구하고, 기술 관련 사업화의 다양성 및 변동성을 감안할 때 표준화된 기술 평가의 구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달리 유럽의 경우에도 엔젤 투자 등이 안정화되지 않았으며, 특히 성장자본에서 공급의 갭이 크게 발생해 공공금융기구가 자본시장에서도 핵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단계별 기술금융의 역할과 국가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 측면 등에서는 성장 금융의 확충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흐름이 짙다고 분석했다.
국내 기술금융은 오랜 추진 경험과 기틀이 마련됐음에도 질적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장기적이고 일률적인 전략이 부실해 자생적 기술금융 생태계 조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전통적 금융은 혁신기업의 특징에 기반한 수요를 해소하기 역부족이다. 국내에서 최근 재추진되는 공공기반 IP 금융 등에 대한 다양한 측면으로 바라보고, 기술 금융의 포용성을 넓히기 위해 기술 평가 신뢰성의 지속적인 제고도 수반돼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