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협력업체 직원 사망사고까지 합하면 30명 육박
“안전체계만 갖추면 처벌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 줘”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최근 질식(추정)으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이후 현대차에서만 해마다 빠짐없이 직원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안전관리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이 회사 협력사 직원들의 사망사고까지 합하면 사망자 수는 거의 3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들 사고와 관련해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된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단 한 명도 없어 이같은 사망사고가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중처법 시행 이후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현대차에서만 발생한 직원 사망사고는 총 3건이다.
가장 최근엔 19일 오후 3시경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 4공장에서 난 사망사고다.
공장 내 전동화품질사업부 차량 성능 테스트 공간(체임버)에서 40대 A씨, 30대 B씨, 20대 C씨 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 등은 이날 차량 주행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차량 1대가량이 들어가는 정도 크기인 체임버에서 일하다가 질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사망자들은 모두 연구원이고 2명은 현대차 소속, 1명은 협력업체 소속 직원이었다.
이에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해 “고인들이 일했던 체임버는 밀폐 공간 작업 시 시행돼야 할 어떤 안전 조치도 없었다. 유해가스 측정 장치도,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경고 표시장치도, 위험을 인지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관리감독자도 없었다”며 “여기에 작업자의 안전을 마지막으로 지켜줄 보호구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안전대책은 부재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어 "이번 사고는 중처법 시행 이후 현대차에서 발생한 세 번째 중대재해 사고"라며 "현대차는 사고 원인 조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야 하고 노동부는 어떤 상황과 이유도 고려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고 원인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측은 특히 “중대재해 사망자가 3명이나 동시에 발생한 이번 사고의 엄중함을 물어 현대차 경영책임자를 구속수사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지난해에도 직원 사망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13일 현대차 직원인 30대 A씨는 울산공장 카파엔진공장에서 열처리 설비가 고장나자 이를 보수하다가 변을 당했다. A씨는 동료 1명과 함께 설비 수리에 투입됐다가 기계에 머리 뒷부분이 끼여 숨졌다.
중처법이 시행된 해인 2022년에도 현대차에서는 유사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그해 3월 31일 전북 완주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40대 A씨는 트럭 운전석(캡)을 들어 올린 후 '틸팅'이라는 작업을 벌이다 갑자기 내려앉은 운전석에 깔리고 말았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A씨는 사고 직후 공장 측의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A씨는 현대차 소속 품질관리부서 직원이었다.
조사 결과 현대차 작업 매뉴얼에는 중량물 작업을 할 때 호이스트 크레인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500㎏이 넘는 캡은 천장에 설치된 크레인에 고정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 현대차그룹, 2년 2개월간 사고로 28명 숨져
현대차그룹의 사망사고 사례를 그룹 계열사뿐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난다.
‘매일노동뉴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토대로 중처법 시행 후인 2022년 1월 27일부터 2024년 3월 30일까지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현대차그룹에서만 중대재해가 23건 발생했고 23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차그룹은 2년여간 현대건설(8건), 현대제철(4건), 현대엔지니어링·현대비앤지스틸(각 3건), 현대자동차(2건), 현대스틸산업·현대모비스·기아(각 1건) 등 계열사 전반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박해철 의원은 “한 기업집단에서 23건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룹 차원의 안전보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인데도 노동부와 검찰이 대기업 경영책임자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며 “대기업은 형식적인 안전보건 체계만 갖추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여기에 전수조사 기간 이후 발생한 사고까지 포함하면 사망자수는 무려 28명으로 늘어난다.
올해 5월 10일 현대차 협력업체인 엠에스오토텍 직원 1명은 자동차부품 코일 적재장에서 코일 이재 작업 중 코일이 전도돼 협착사고로 사망했다.
아울러 이달 19일 발생한 3명의 질식 사망사고 이전인 7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내 전기차 전용공장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50대 직원 1명이 12m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그는 사고 당시 안전대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카라비너가 D링에서 탈락하면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 관계자는 “이번 추락사와 관련해 발주처가 현대차, 시공사가 현대엔지니어링이었다”며 “법상 재해의 책임은 시공사가 지는 까닭에 현대차가 (사망사고 수습에)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현대차 “대책 마련에 최선” vs 노조 “공염불에 그칠 것”
현대차그룹은 사망사고 발생때마다 ”정확한 사고 경위에 대해 조사하고 후속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엇비슷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공언은 매년 발생하는 사망사고로 인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1년 간 이 정도의 사망사고가 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반복되는 중대재해는 작동하지 않는 현대차의 안전관리시스템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재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1월 27일부로 시행된 중처법에는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막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사망사고의 경우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 부상사고는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중처법 위반에 해당돼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30건에 육박하지만 정작 기소된 사건은 단 1건도 없었다.
실제 지난 2022년 3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일어난 직원 1명의 사망사고는 사고 발생 2년 7개월만에 검찰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됐다.
지난달 11일 전주지방검찰청은 전주공장 직원 사망사건과 관련해 현대차를 기소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수사팀은 현대차가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진상조사를 맡았던 고용노동부 산하 광주지방노동청은 지난 9월 무혐의 의견으로 이번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송치했다. 전주지검도 같은 판단 하에 현대차를 기소하지 않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7월 울산공장에서 직원이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 수사가 1년 4개월째 진행 중이다. 이 사고 또한 불기소 처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노동계는 관측하고 있다.
현대차 이동석 최고안전책임자(CSO)는 최근 직원 3명의 질식 사망사고와 관련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표이사 CSO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과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며 "사고 원인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필요한 조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는 ”잠재적 위험요인이 예상되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보다 철저히 추진해 나가겠다“며 ”향후 이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