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최정훈 기자] 최근 속도가 붙은 백신 보급, 팬데믹 사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유가 지표 등 경기 호전 시그널이 명확하게 나오는 모양새이다. 이 같은 경기 반등 신호에도 제조기업들의 설비투자 심리는 여전히 위축된 것으로 나타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2018년부터 미중 패권전쟁으로 촉발된 무역분쟁 등 국내외 시장에 긴장감이 돌면서 우리나라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부문 투자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2018년 -0.8%p, 2019년 -1.4%p로 2년 연속 내리막을 걸었다.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 개발 및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 등이 본격 개화하기 시작한 지난해에서야 상승폭을 그릴 수 있었다.
특히, 반도체가 설비투자를 견인했다. 지난해 초부터 메모리 가격의 하락세가 진정되고,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에도 본격 시동이 걸렸다. 우리나라 전체 설비투자 성장률이 마이너스(-1.0%)를 시현한 가운데도 민간부문 투자 경제성장 기여도는 플러스(0.6%p)를 기록하게 한 공신이 반도체였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각종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액이 48억7,000만 달러(5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 등 메모리 및 파운드리 설비투자는 계속 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타 산업들은 여전히 위축돼 있다. 전체 산업 설비투자의 24%를 점유하는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철강·조선 등 전통 제조업 분야는 투자 감소로 2017년부터 전반적으로 역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제조업 설비투자 중 반도체의 비중은 2011년 23.4%에서 2020년 45.3%로 21.9p 상승했다. 2020년 일본의 제조업 설비투자 1위 업종 수송용 기계의 비중이 제조업 설비투자의 약 21%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설비투자 구조는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도체 등 전자부품 중심으로 편중돼 타 산업들은 방치된다면, 경제 회복력, 고용, 부가가치 창출 등 모든 경제 활력을 저하시킬 공산이 크다.
한편, 전경련이 최근 10년 간 한국, 중국, 일본의 국내 설비투자와 해외직접투자 동향을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설비투자 증가율이 가장 낮으며, 해외직접투자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설비투자 연평균 증가율은 한국 2.5%, 중국 4.3%, 일본 3.9%로 우리나라가 가장 저조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해외직접투자 연평균 증가율은 한국 7.1%, 중국 6.6%, 일본 5.2%로 우리나라가 가장 높았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은 중국이 헬스케어, 전자상거래 등 신성장분야 투자를 지속 증가시켰으며, 일본은 기업 감세정책과 산업 활력에 역점을 둔 정책으로 민간 혁신투자를 끌어 올렸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해외투자가 활발했던 것은 지난해 90억 달러 수준의 SK하이닉스의 미국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등 글로벌 대형 M&A와 전기차반도체 등 시설투자가 지속 증가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부터 무분별한 해외 M&A 제한, 자본 유출 통제 강화 기조에 따라 중국 기업들이 해외직접투자 규모를 줄였으며, 일본은 팬데믹으로 인한 對EU·ASEAN 투자 급감으로 전년 대비 33.8% 감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대조된다. 한편,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 비중은 2018년 기준 일본 32%, 한국 22%, 중국 14% 수준이었다.
올해도 설비투자가 계속해서 얼어붙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 4월 한국경제연구원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계획 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자계획이 없거나 지난해 대비 축소한다고 답한 기업이 58%인 것으로 조사됐다.
투자심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 완화, 세제 개혁 등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기업들이 국내에는 인․허가 및 환경 규제, 노동코스트 증가 등으로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면이 존재하는 만큼 정부․국회는 기업의 신성장분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인․허가 규제, 환경 규제, 영업활동 제한 등 각종 규제의 개선을 통해 기업의 국내투자 활성화를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투자 분야를 지속 발굴해야 하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은행 대출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 자금조달을 확대해 투자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