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지난 7월 14일, 대한민국 태양광 역사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2026년 개최되는 제9회 세계태양광총회(WCPEC-9)의 개최지로 대전시가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사실 태양광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들이라면, 단순히 수많은 국제학술대회 중 하나가 국내에서 개최된다는 정도로만 치부할 수 있다. 실제 높아진 국가적 위상으로 다양한 국제행사가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만큼, 그리 놀랄만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세계태양광총회 개최지 선정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저 수많은 국제행사 중 하나로만 치부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대해 WCPEC-9 유치위원회 김동환 위원장(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은 “WCPEC는 전세계 태양광 산학연 전문가들의 참가 최우선순위 국제행사로, 우리나라 도시가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산업, 학술 등 다방면에서 우리나라 태양광 분야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세계태양광총회는 대륙별로 4년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태양광 국제학술대회다. 4년의 개최 주기와 유럽(EUPVSEC), 미국(IEEE PVSC), 아시아(PVSEC) 3개 대륙 소속 국가의 도시들이 순차적으로 개최지로 선정된다는 점에서 소위 ‘태양광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제1회 세계태양광총회는 지난 1994년 미국 하와이에서 첫 개최됐으며, 올해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8회 세계태양광총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9회째가 아시아에서 개최될 차례였다. 그동안 아시아에서는 두 번의 세계태양광총회가 개최된 바 있다. 그리고 두 번의 총회 모두 일본에서 진행될 만큼, 일본이 가진 영향력은 매우 막강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이 이번 9회 대회 역시 유력한 개최지로 일본 치바현을 전망했다.
WCPEC-9 유치위원회 손창식 부위원장(신라대 신소재공학과 교수)은 “오랜 시간 일본이 쌓아온 위상과 영향력으로 인해 투표 이전부터 ‘차기 개최지는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이 가진 위상과 영향력뿐만 아니라 일본에 우호적인 이들로 구성된 PVSEC IAC(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위원회까지, 여러 요인들이 일본의 승리를 전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IAC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일본의 원로 교수는 공공연히 일본의 개최지 선정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 더욱 패색이 짙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손 부위원장은 “우리 유치위원회가 계산을 해보니 투표권을 가진 IAC 위원회 중 절반가량이 일본에게 표를 줄 것으로 예상됐다”며, “산술적으로 도저히 승리가 불가능해 보였던 승부”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불가능해보였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힘을 합쳤기 때문”이라며, “발표 당시에는 정말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의 오랜 염원이었던 세계태양광총회의 국내 개최를 성사시키는데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외 40개국의 태양광관련 산·학·연·기업 관계자 2,000여명, 국내 관계자 2,500여명까지 합치면, 총 4,500여명이 오는 2026년 대전시에 모인다. 이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지난 3년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WCPEC-9 유치위원회 김동환 위원장과 손창식 부위원장이 있었다. 이에 위원회 설립부터 최근까지 치열했던 3년간의 준비 기록, 기쁨과 환호만이 가득했던 7월 14일 현장의 열기를 전해 듣기 위해 그들을 만났다.
세계태양광총회의 국내 개최를 축하한다. 당시 소감은?
김동환 위원장(이하 김) – 성공했다는 기쁨을 말로는 전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말 실감이 안 났다.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여기까지 함께해준 선배, 후배 등 동료들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대전시에 대한 고마움, 오랜 시간 교류해온 일본 위원들에 대한 미안함 등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손창식 부위원장(이하 손) - 최종 투표에서 일본 치바현을 제치고 대전이 선정됐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더라. 개인적으로나 국내 태양광 학계 차원에서나 오랜 시간 염원했던 꿈이 이뤄진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태양광발전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타국 동료 위원들에 대한 미안함의 이유를 들어볼 수 있나?
김 – 우리나라 태양광발전은 산업, 학술 등 다방면에서 매우 위상이 높아진 상황이다. 최근 PVSEC의 제주도 개최 등 국제 행사에 대한 기여도도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가 개최지로 선정되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그럼에도 제9회 세계태양광총회의 한국 개최를 점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일본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전세계 태양광발전에서 위상과 영향력을 쌓아온 일본은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또한, 일본인 IAC 위원장의 자국 개최 의지도 매우 강했다. 여기에 투표에 참여하는 국가별 IAC 위원의 상당수가 일본 친화적이었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일본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손 – 우리가 충분한 개최 명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내 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40, 50대의 비교적 젊은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제9회 개최지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수직적인 구조가 강한 일본사회는 여전히 리더의 의견이 먼저였고, IAC 위원장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기류였다. 이에 친분 있는 IAC 위원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설득을 진행하며, 일본으로 쏠린 표심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진행해왔다.
김 – 이러한 과정에서 친분 있던 일본 학자들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와 3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교류를 가져왔고, 몇몇 이들은 서로의 가족을 알 정도로 돈독한 사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들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꿈을 위한 행보가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결과 발표 당시 기쁨과 함께 미안한 감정도 가지게 됐다. 물론, 개최에 성공했다는 기쁨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다. (웃음)
글로벌 태양광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크다보니 일본이 가진 학술적 영향력이 다소 낯설다
손 – 우리나라는 R&D와 산업 발전의 역사가 비슷하게 흘러간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연구자들이 등장하고, 학회가 설립됐다. 여기서 정책 등을 제언하고, 기업과의 인력양성에도 기여한다.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가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강력한 정부 주도 아래 태양광산업이 발전해왔다. 때문에 학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중국재생에너지협회만 존재한다. 정부의 핸들링 아래 관련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학술적 측면에서는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일본 역시 학회의 형성은 다소 늦은 편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학술대회에서 일본이 가진 영향력은 상당하다. 핵심 원천기술 등 그들만의 강점도 갖고 있다. 학술 교류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배울 점이 있는 국가다.
김 – 태양광발전에서 일본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5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세계 학자들과 꾸준히 교류해왔고, 세계에 자신들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번 제9회 세계태양광총회 개최지 선정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도 이제는 우리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국제무대에서 받기만 하는, 개발도상국 같은 마음을 가져선 안 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서 시장을 주도하고, 다른 나라를 이끄는 역할을 수행할 때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꼭 참석해야하는 자리가 아니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그렇지 않더라. 그동안의 국제학술대회 모습을 보면, 그들은 폐회식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그러면서 대회를 이끈 주요 위원들에게 인사도 하고, 차기 개최지에 대한 홍보활동도 펼친다. 우리나라의 위상과 국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제 달라져야한다. 그래서 이번 세계태양광총회가 달라질 대한민국의 신호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다시 개최지 선정과정으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의 세계태양광총회 첫 개최도시로서 대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손 – 수많은 연구단지가 존재하는 ‘과학도시 대전’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국내 태양광을 대표하는 센터와 연구자들 등 유치위원회가 세운 평가기준에서 대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역 특혜 등 혹시 모를 구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별 안배와 지역색을 최대한 배제한 평가를 진행했고, 대전이 만장일치로 개최지 후보로 선정됐다. 대전시 역시 세계태양광총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개최지 투표에서 한국과 일본이 각각 1차에서는 18표와 15표, 2차에서는 23표와 16표를 획득했다. 일본의 개최 우세를 점쳤던 이들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표차가 발생했다
김 – 발표를 잘했다. 자화자찬하는 발언은 아니고, 좋은 발표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많은 분들이 준비를 해줬다. 특히, 대전시의 역할이 컸다. 국내 개최 후보 도시로 선정됐을 때부터 먼저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제안하더라. 구체적인 활동계획이 나오지 않았던 시기이다 보니, 당시에만 해도 ‘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웃음)
국내 개최 후보 도시로 선정된 시점에서부터 WCPEC-9 홈페이지와 대전시 홍보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대전시의 이러한 적극성이 개최지 선정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홈페이지 제작을 통해 투표 전, 각국 위원들에게 우리를 한 번 더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홍보동영상은 발표에 활용되며, 다소 지루할 수 있었던 발표의 단조로움을 없애줬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대전시 관계자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손 – 30분의 발표시간, 그중에서도 10분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는 짧은 시간을 위한 3년여의 준비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발표 시뮬레이션 등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를 진행한 반면, 일본이나 중국은 그러지 못한 모습이었다. 중국은 기업 지원 등 산업 규모에만 초점을 맞췄고, 일본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발표를 진행해 위원들에게 많은 표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개최지 선정 이후, 앞으로의 일정은?
김 - 지난 2020년 유치 성공을 목적으로 한국태양광발전학회 이사들로 구성된 유치위원회의 임무는 이제 끝났다. 앞으로는 조직위원회가 행사 준비를 이끌 것이다. 그리고 그 첫 행보는 9월 2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되는 제8회 세계태양광총회가 될 예정이다. 여기서 차기 총회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고, 2026년 WCPEC-9이 명실상부한 세계 태양광의 올림픽 대회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4년간의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밀라노에서의 홍보활동은 어떻게 전개되나?
손 - 차기 개최지인 대전시가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할 계획이다. 유치위원회와 대전시의 주요 관계자가 밀라노 행사에 직접 참석해 WCPEC-9를 홍보하고, 밀라노 행사장에 홍보 부스를 설치할 예정이다. 유치위원회는 세계 IAC 위원들과의 네트워킹 및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세계태양광총회 유치가 국내 태양광산업에 미칠 영향은?
김 - 이번 행사 유치는 우리나라 태양광 R&D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우리나라 태양광 R&D 및 산업 기술 경쟁력을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의 장으로 활용 가능할 것이다. 또한, 행사기간 중에는 재생에너지 대시민 홍보 및 수용성 확대, 국내 산학연 태양광 인프라 소개, 연구성과 홍보 및 국제협력 강화, 기업의 비즈니스 네트워킹의 장으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성과 도출이 가능할 것이다.
2026년 총회 개최까지 앞으로의 계획은?
김 - 올해 9월부터 개최지 선정 발표 당시 약속한 다양한 프로그램 준비를 시작하고, 앞으로 4년간 국가행사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업부, 한국태양광발전학회, 대전시, 대전관광공사가 함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태양광을 위시한 RE100, 탄소중립 이슈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고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