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시총 약 5000억원 증발에 비해 600억원 증가 그쳐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풍문의 영향으로 수천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지만 더딘 회복세를 보이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롯데 측에선 ‘루머’라고 일축하며 적극 반박에 나서는가 하면 최초 유포자를 상대로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쇄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정보지' 내용이 유포됐던 지난 18일 하루동안 그룹 계열사에서 총 5000여억원의 시총이 증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마감 기준 롯데그룹 11개 상장사의 시총은 전일보다 600여억원 증가하는데 그치며 전일 폭락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날 하락세를 보였던 롯데케미칼은 이날 전일대비 1.97% 오른 6만 7200원, 롯데지주는 0.73% 오른 2만 7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롯데쇼핑은 5만 7900원으로 0.17% 하락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6일 유튜브 채널 두 곳이 '롯데그룹 공중분해 위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시했고 관련 내용이 지라시 형식으로 메신저 등을 통해 유포되며 파장이 커졌다.
해당 지라시에는 △롯데의 내달 초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설 △차입금 39조원 △롯데건설 미분양으로 계열사간 연대보증 치명타 △그룹 소유 부동산 매각해도 빚 정리 어려움 △전체 직원 50% 이상 감원 예상 등의 내용이 담겼다.
롯데그룹이 해명 공시를 내고 이같은 풍문의 사실관계가 허위라는 사실이 일부 확인되면서 일단 진정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롯데그룹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최근 롯데 계열사들의 부진한 경영 행보에 ‘아니뗀 굴뚝에 연기날까’와 같은 시장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시선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재계 순위 6위의 롯데그룹 주가가 한낱 정보지에 휘청한 배경에는 실적 부진 장기화가 기저에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8월 한국기업평가가 내놓은 '주요 그룹 재무역량 및 경기대응력 점검'에 따르면 국내 주요 10대 그룹 중 롯데그룹은 커버리지(2023년 7.08배)와 레버리지(30.0%)가 높아 재무부담이 가장 컸다.
커버리지는 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으로, 레버리지는 보유 자산 대비 차입금의존도로 대표된다. 두 지표가 높다는 것은 부채는 많고 상환 능력은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같은 결과는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 업황이 부진한 이유가 가장 크다. 롯데그룹은 사업 확장과 신사업 확대를 위해 인지도 있는 기업들을 인수했지만, 현재 인수대금 회수도 어려운 실정이다.
롯데그룹은 2021년부터 일진머티리얼즈(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2조 7000억원)과 한국미니스톱(3134억원), 한샘(2995억원), 중고나라(300억원) 등을 인수했지만 모두 적자상태다.
특히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적자가 6600억원에 달한다. 기초화학 부문 의존도가 높은 사업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며 중국발 공급과잉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롯데쇼핑도 소비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1~3분기 누적 매출이 전년보다 3.8% 줄었다. 순이익은 90.7%나 급감했다.
이커머스 롯데온은 출범 이래 4년 동안 5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롯데면세점도 4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롯데그룹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배경에는 롯데건설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로 통한다.
롯데그룹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채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그 폭도 건설사 중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연장이 어려워졌고 이를 롯데건설이 떠안는 과정에서 차입부담이 확대됐다.
롯데건설의 1대주주는 롯데케미칼(44.0%), 2대주주는 호텔롯데(43.3%)이다. 롯데건설에 문제가 생기면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롯데의 유동성 우려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지난해와 올해가 투자의 피크였다"며 "계열사를 제외한 롯데케미칼 자체의 펀더멘탈(기초여건)을 고려하면 캐시플로우(현금흐름)는 우려보다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이진협·최영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쇼핑의 경우 유동성 우려를 하기에는 현금흐름이 매우 양호하다”며 “유동성 우려가 있다면 경영진이 앞장서 배당 성향 상향 등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