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취임후 사업 뒷전으로 밀리며 ‘GBC 포기설’ 대두
서울시-현대차 ‘네탓’ 공방…‘공공기여금’ 둘러싼 팽팽한 기싸움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사들여 105층짜리 초대형 랜드마크로 지으려했던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콤플렉스(GBC)’ 공사가 10년 넘게 겉도는 등 공회전만 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회장 시절 숙원사업으로 일궈냈던 GBC 건립은 아들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2020년 이후 아예 뒷전으로 밀리며 일각에서는 ‘GBC 포기설’ 마저 대두되고 있어 주목된다.
28일 현대차그룹과 서울시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 7월 현대차가 제시한 55층 2개동으로 짓겠다는 GBC 건설 변경안을 서울시가 거부하며 계획이 철회된 이후, 양측 모두 별다른 움직임이 없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현대차가 7월에 자체 변경 계획안을 철회한 이후 저희(서울시) 쪽에 GBC와 관련해 그 어떤 것도 제안한 것이 없다”며 “그쪽(현대차)에서 건설 계획안을 보완해 가져와야 시(市)가 뭘 할 수 있는 건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저희로선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당 토지(옛 한전부지)에 대한 설계 변경은 소유주인 현대차가 자율적 의지로 해야 한다”며 “시에서는 제안서를 ‘빨리 가져와라’, ‘공사를 해라, 하지마라’ 등 말할 수 있는처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서울시 측은 현대차가 기존 협의한 설계와 다르게 공사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와 재협상을 해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사실 저희가 서울시를 상대로 100층으로 짓겠다. 디자인을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등의 내용은 허가받아야 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서울시와는 용도 변경, 용적률 등과 관련해서만 협의를 하고 허가를 받으면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어 “서울시와 협의는 계속 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일각에서는 양측이 이처럼 ‘네 탓’ 공방을 하고 있는 기저에는 ‘공공기여금(개발이익금)’을 둘러싼 팽팽한 기싸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현대차그룹과 서울시는 2016년까지 GBC를 105층 규모로 짓기로 하고 현대차가 서울시에 1조7491억원의 공공기여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서울시는 서울균형발전론을 내세워 이 공공기여금을 GBC가 들어설 강남구뿐 아니라 전체 서울시민을 위해 사용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서울시는 GBC 사업과 관련해 당초 협의된 계획안에 따라 현대차가 인센티브(토지용도변경‧용적률 완화 등)를 받았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초고층 GBC가 아닌 층수를 낮춰 건립한다면 공공기여금을 1조7000억여원에서 3조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수빈 서울시의원(민주당)은 이달 20일 열린 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GBC 사업과 관련해 현대차의 공공기여금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관심을 끈 바 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GBC 사업 관련 공공기여금은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해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협상을 통해 최대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만약 GBC 협상에서 공공기여금이 줄어들거나 특혜성으로 마무리된다면 오세훈 시장 역시 배임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대차 입장에서는 최대 3조원까지 거론되는 공공기여금을 투입하면서까지 GBC 개발에 사활을 걸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GBC 건립이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지 아들인 정의선 회장의 목표는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GBC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그룹의 새로운 100년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운 곳이기도 하다. 2014년 부지매입 비용으로만 단군이래 최대 거래가액인 10조5500억원이 투입된 것만 봐도 정 명예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은 재계에서도 ‘실리주의’를 중시하는 경영자로 정평이 나있다. 이에 정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21년 5조원 이상의 개발 비용이 들어가는 GBC의 높이를 50층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하는 등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GBC 건립에는 공공기여금을 포함해 5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초고층’이라는 상징적 빌딩을 짓기보다 ‘실리’를 택해 해당 재원을 신규 사업에 투자하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특히 당초 초고층에 따른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을 필요가 없어져 GBC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도 그만큼 줄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공기여금 1조7000억여원에 GBC 건축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건축비는 약 3조7000억원에 이른다. 최근 공사비가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그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여지가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층수를 낮추는 설계 변경으로 현대차그룹은 약 1조원 이상의 사업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이 과거 한전부지를 매입할 당시 대출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현금을 투입했기 때문에 사업 지연에 따른 부담이 적은 상황인 점도 GBC 개발을 더디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정의선 회장과 결이 맞지 않아 보이는 GBC 건립이 아예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다만 해당 부지의 가치가 현재 20조원에 달하는 만큼 이를 부담할 수 있는 기업이 등장할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