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통과되면 '지북파' 이종석과 '동맹파' 위성락이 이재명 외교안보정책의 양대 축으로
이종석, 단절된 남북 채널 복원과 한미 균형 외교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 떠안아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국회 정보위원회는 오늘(19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연다. 여야는 이 후보자가 정보기관 수장을 맡을 자질과 역량, 도덕성 등을 갖췄는지 검증할 예정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의 도로교통법 위반과 같은 도덕성, 친북 성향의 대북관 의혹 등에 대해 날카로운 공세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석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여권으로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이 후보자 청문회 과정에서 돌발이슈가 터져 자칫 낙마라도 하게 된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전략 자체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새로운 외교안보정책을 펼 수 있도록 국회가 협조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이 후보자가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 후보자의 도덕성과 대북관 등의 논란에 대해 여론의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면 이종석 후보자에 대한 신뢰도에 금이 갈 수 있고 이것이 향후 외교안보 정책 수행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후보자의 청문회는 단순히 그의 정보기관 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대외 안보 전략의 토대를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종석 후보자는 약 40년간 북한의 정치와 남북관계 등을 연구해온 베테랑 대북 전문가다. 특히 김대중 정권 이후 활동해온 '지북파'(知北派)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전문성을 토대로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 전략을 펼칠 인사"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후보자는 진보정권의 '햇볕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인물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1994년을 전후로 연구활동을 통해 북한에 대한 내재적·비판적 접근을 강조하며 북한·남북관계·북중관계를 깊이 천착했고 이때부터 포용정책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으며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설계에 기여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때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3월 NSC 사무차장으로 임명됐으며 2006년 2월 통일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여파로 그해 12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세종연구소에서 수석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공직을 맡지 않다가 약 19년 만에 정부 당국자로 복귀하게 됐다. 이번 대선에선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의 좌장을 맡았으며 그간 이재명 대통령의 통일·외교 노선 수립에 깊이 관여해왔다.
이종석 후보자는 진보정권 출범 때마다 대북관계 전문가이자 '지북파'의 대표적 인물로 중용돼 왔다.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이재명 대통령이 진보정권의 대북관계 연속성을 유지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옛 라인의 복원'을 통해 화해 메시지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남북관계애 관여해온 이 후보자를 다시 기용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의 능력과 경륜을 높이 사고 있고 남북관계 복원에도 의지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고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익 우선주의'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국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대북관계 추진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트럼프 미 정부가 이재명 정부를 배제한 채 북한과 독자적인 외교협상 채널을 열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앞서의 외교가 소식통은 이에 대해 "북한은 올해 초를 전후로 한국을 같은 민족에서 다른 국가로 받아들이며 남북관계 자체를 아예 닫아버렸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독자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진보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북미관계에 한국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이번 이재명 정부도 대표적인 지북파인 이종석 후보자를 내세워 붕괴된 남북관계 채널을 복원하고 북미회담이 개최된다면 한국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얼마나 이재명 정부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줄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불신'의 단초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한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수천 명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온 것에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안이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양자 협상' 테이블의 전제 조건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독자적인 중재자 역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외교안보의 대표적 지북파인 이종석 후보자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여야 모두 그의 남북관계 전문성과 경륜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청문회는 도덕성이나 과거 발언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국민의힘도 이 후보자의 대북관이나 생활법규 위반 이력을 문제 삼고 있지만 결정적 한 방은 없어 보인다.
결국 이종석 후보자의 청문회는 절차적 관문일 뿐 진짜 시험은 그 다음에 시작된다. 이종석 후보자가 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이 후보자는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 전략의 설계자로서 단순히 정보기관 수장을 넘어 ‘햇볕정책 시즌2’를 재구성할 실질적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그를 “남북관계 개선의 전략가”로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2025년의 외교 환경은 20여 년 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지형 위에 놓여 있다. 우선 북한은 한국을 ‘같은 민족’이 아닌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며 남북관계 채널 자체를 일방적으로 차단한 상태다. 미국은 전통적인 한미공조보다는 ‘미북 양자 외교’에 무게를 싣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을 조건으로 한 북미협상 카드까지 꺼내든 상황이다. 이처럼 한국은 북한으로부터는 외면당하고 미국으로부터는 패싱당할 수 있는 ‘이중 고립’의 경계에 서 있다.

그렇기에 이종석 국정원장 체제의 출범은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출발 신호'라기보다는 무너진 채널의 복구 작업에 더 가깝다. 과거 햇볕정책의 상징성을 다시 꺼낸다고 해서 자동으로 평화의 채널이 복원되는 시대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준비한 구상은 복고적 의미의 햇볕정책이 아니라 완전히 급변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외교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종석 국정원장 체제가 과연 작금의 복잡하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실효적인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할 명분을 찾을 수 있도록 유연한 전략을 설계해야 하고 미국과는 동맹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한국 외교의 독립성과 중재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동시에 국내 보수진영의 ‘안보 포기’ 프레임을 돌파할 수 있는 정치적 방어력도 갖춰야 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달라진 한반도 정세와 대북, 대미 관계에 대한 이종석 후보자의 구체적인 대안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질의하는지가 이번 청문회의 관전 포인트다.
한편 이 후보자는 지난 11일 "본인은 젊은 시절부터 단 한 번도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거나 논문을 작성한 적이 없다"며 친북적인 대북관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후보자는 일부 인터넷 매체 보도와 관련해 낸 입장문에서 "사실과 전혀 다른 허위 주장을 보도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가 최근 5년 동안 총 16번의 속도·신호위반 등으로 과태료 73만원을 납부해 도로교통법 등 생활기초질서에 너무 무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06년 통일부 장관에 지명됐을 때도 속도위반으로 5년 동안 12차례나 과태료를 낸 게 드러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준법정신 결여라는 지적에 대해 "일요일마다 회의 참석하러 제가 제 차 몰고 나오다가, 1주일에 한 번씩 운전하다 보니 감이 떨어져서"라고 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