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제77주년 제헌절 우원식 국회의장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77주년 제헌절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산업화와 민주화, 헌정질서 수호를 위해 헌신해 온
모든 분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경축식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입법부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큰 피해가 없도록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 올해 제헌절의 의미 :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 ]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고 처음 맞는 제헌절입니다.
많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국민 여러분도 그러실 겁니다.
있는 곳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국가적 위기와 불안, 혼란을 함께 겪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안도감,
우리 국민 스스로 그것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그 시간을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어쩌면 헌법과 국회를 잃을 뻔했던 그날,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이었습니다.
국민은 가장 강력한 헌법의 수호자였습니다.
국민이 헌법을 지켜낸 나라,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을 지켜낸 나라, 대한민국.
그래서 헌법은 힘이 세고, 대한민국은 강합니다.
[ 헌법과 민주주의, 국가경쟁력 : 헌법은 힘이 세다. ]
지난 반년 우리는 헌법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고
또 구체적인지 깨달았습니다.
헌법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현대사는
헌법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한
국민의 참여와 용기로 전진해온 역사입니다.
1960년 4.19에서 2024년 비상계엄 사태 극복까지,
우리 국민은 권력자의 헌법 훼손에 저항하고
작동하지 않는 헌법에 의문을 제기하며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통치행위를 심판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치열한 여정이
헌법을 그저 조문이 아니라
권력이 국민을 위해 쓰이게끔 통제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규범으로
국민들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게 했습니다.
그날 밤, 수많은 국민들이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국회 앞으로 모인 힘도,
추운 겨울 광장을 지킨 힘도, 바로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헌법을 지키려는 우리 국민의 의지에는
사실 오랜 뿌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한
우리 민주주의의 시작점, 1894년 동학농민혁명,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K-집회의 시초, 1898년 만민공동회,
우리에게 국민주권은
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1910년 바로 그날부터 발생했다고 천명한
1917년 대동단결선언.
이런 역사가 이어져 1919년,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민주공화제’를 명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과 임시헌법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국민주권 정신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독립운동으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으며,
헌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습니다.
헌법을 만들고,
헌법에 담긴 그 역사와 정신을 지키려는 우리 국민의
강한 의지와 헌신적 노력이 이어져
지난겨울 세계를 놀라게 한
민주주의 회복력으로 빛났습니다.
헌법은 우리에게 국민의 상식이고,
국민이 지키고 발전시켜온 국민의 것입니다.
그래서 헌법은 힘이 셉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운 제헌 의원들께
특별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여러분, 제헌 의원 유족들께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헌법이 힘이 센 것은
헌법이 국민을 지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망한 부모가 진 빚을 모른 채 재산을 상속한 자녀에게
부모의 빚을 갚도록 해온 민법 조항은
헌법이 규정한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을 받고
국회에서 개정되었습니다.
억울한 빚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근거해
동성동본금혼제와 호주제가 폐지됐습니다.
법률혼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20만 가구가 구제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지원하는 정책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헌법은 또, 국가경쟁력의 토대였습니다.
헌법의 사전검열 금지조항을 근거로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폐지되자
표현의 자유가 획기적으로 확대되면서
훌륭한 인재와 대형 자본이 한국 영화산업에 몰려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속의 한류 문화를 만든 동력이 됐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대한민국은
헌법을 지키고,
헌법이 국민들 삶 속에서 살아있게 하려는
의지가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 개헌에 대한 인식전환 : 헌법은 한 번의 개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 헌법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튼튼한 민주주의,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해서
시대의 요구에 맞게 헌법을 정비해야 합니다.
제헌헌법 이후 아홉 번의 개헌이 있었습니다.
특정인이 대통령이 되거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서
헌법을 고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방적으로 추진하거나 국회가 해산된 상황에서였습니다.
4‧19 혁명과 6‧10 민주항쟁 이후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개헌도 있었지만
추진과정을 국민과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국회와 정부, 국민이
함께 만든 헌법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역사가 개헌을 당장 내 삶과는 관련이 없는 일로 여겨지게 했습니다.
30년 넘게 논의만 무성하고 번번이 성사에는 실패했던 경험은
개헌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모든 것을 꺼내놓는,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개헌 추진 방식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완성이 없듯이
헌법도 한 번의 개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적 과제와 국민의 요구를 담아내며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1987년 개헌 이후 38년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간입니다.
그러나 헌법은 그 엄청난 변화를 전혀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미래의 발전과 변화, 나아가야 할 길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현행 헌법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가 초만원’이라는 구호가
국가정책이던 시대에 만들었습니다.
일상 속에 인터넷과 핸드폰도 없었고,
자식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잘살 수 있다고 여겨지던 시절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시절의 헌법으로 오늘을 살고
미래와 싸우고 있습니다.
상상해봅시다.
기후위기 시대, 만일 우리 헌법에
기후재난의 위험과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담겨있다면,
폭우 폭염에 생명을 잃고 안전이 위협받는 비극,
앞날이 막막한 농축수산업 현장의 한숨도 줄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상상입니다.
만일 지금 우리 헌법에
인구소멸과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국가의 책무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시대의
중소상공인, 노동권 보호와 기술혁신의 균형이 담겨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입니다.
지난 40년 누적된 갈등에 더해
새롭게 닥친 과제 대부분이 잠재적 갈등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헌법이 갈등을 없앨 수는 없지만,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고 최소화하는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국민 각자가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공존과 연대의 기반을 닦을 수는 있습니다.
과거의 틀에 묶여있는 낡고 좁은 헌법으로는 어렵습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변화는 시시각각 물밀 듯이 닥쳐오는데
헌법을 이렇게 계속 제자리에 묶어두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입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전면적 개헌보다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개헌’으로,
국회와 정부, 국민이 모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수준의 개헌’으로 첫발을 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 개헌의 시기와 절차 ]
‘국회와 정부, 국민이 함께 만드는 헌법’을 목표로
개헌 시기와 방식, 절차를 검토하겠습니다.
여야 정당, 정부와도 협의하고, 국민 여론도 수렴하겠습니다.
여건은 좋습니다.
감사원의 국회 이관 등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확고하고
정당들도 지난 대선에서 모두 개헌을 약속했습니다.
국회의장은 지난 수개월 간 자문위원회를 운영하며
언제든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뒷받침할 준비를 해왔습니다.
국민들 속에서도 비상계엄과 탄핵국면을 거치며
제도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사회대개혁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습니다.
본격적인 개헌 추진 시기는
여러 상황을 두루 살피면서 판단하겠습니다.
대내외 경제여건과 향후 정치 일정,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정부가 안정화되는 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정부 구성이 완료되고,
시급한 민생과 개혁과제가 가닥을 잡아가는 시기가 바람직합니다.
당면 현안을 어느 정도는 매듭지어가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 하반기에는 ‘국회 헌법개정특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국민투표법 개정,
국민이 개헌 방향과 내용에 참여할 방안 마련,
헌법개정안 성안,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개헌의 물꼬를 트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헌법개정안은 우선 합의 가능한 것까지만
담는다는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더 튼튼히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번 12.3 비상계엄을 거치며,
제도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졌습니다.
어떤 정권인가에 따라 헌법과 민주주의가
존중되거나 훼손당하는 불안정성을 해소해야 합니다.
합의 수준도 비교적 높습니다.
예를 들어,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언한 내용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비상계엄의 선포와 해제 절차에
민주적 통제 장치를 둬야 한다는 요구도 광범위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헌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작동되게끔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에서 논의되어왔습니다.
단 한 가지를 개정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천릿길을 시작하는 첫걸음이기도 하거니와
개헌의 성사가 정치의 복원입니다.
개헌이 개혁이고, 개헌이 민생입니다.
개헌을 통해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개혁과 민생의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갑시다.
헌정회장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일도 서두르자고 제안합니다.
대한민국의 초석인 헌법공포를 기념하는
역사적 의미가 큰 날임에도 불구하고,
5대 국경일 중 제헌절만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닙니다.
헌법의 중요성과 상징성에 걸맞게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건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이 찬성할 정도로 공감대도 넓습니다.
제헌절을 헌법의 가치와 정신, 헌정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온 국민이 함께하는 ‘헌법 축제의 날’로 만들어갑시다.
[ 마무리 : 더 단단한 민주주의의 길을 가겠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국회는, “국회가 가장 앞에서 국민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을 새겨”
국회 앞마당에 민주주의 상징석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입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입니다.
이 뜻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 더 단단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국회가 국민과 함께 그 길을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