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국적 둘러싸고 논란도… “중국계” vs “토종” 공방 ‘팽팽’
최대주주 영풍과 손잡은 MBK… 단독 시도한 소버린과 ‘차이점’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비철금속 부문 세계 1위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싸고 MBK파트너스(이하 MBK)·영풍 연합과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의 대결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MBK·영풍의 공개매수 선언 이후, 양측은 기자간담회를 통한 공격뿐 아니라 보도자료 등을 활용한 반박과 이에 대한 재반박 등 날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20년전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하 소버린)이 SK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이른바 ‘소버린 사태’가 연상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려아연 ‘쩐의 전쟁’과 소버린 사태를 비교해 본다.
경영권 확보 목적 ‘적대적 M&A’
먼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소버린 사태는 현 경영진의 의사에 반해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3일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공개 매수를 선언하면서 MBK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이 최소 144만5036주(6.98%)에서 최대 302만4881주(14.61%)까지 매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취득함으로써 경영권을 공고히 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다”면서 현 고려아연 경영진을 축출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도 SK㈜ 주식을 집중 매입한 뒤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경영권 행사를 시도했다. 2003년 4월 소버린은 SK㈜ 주식 1902만8000주, 약 1689억원 어치를 사들여 자산 규모 17조원인 SK㈜의 1대 주주(14.99%)로 등극했다. 당시 소버린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주주가치를 확립하며 SK㈜를 한국에서 기업 지배구조의 모델 기업으로 바꾸도록 경영진과 건설적으로 작업할 계획”이라며 SK그룹에 대한 경영 참여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적대적 M&A의 영향으로 주가가 급등한 것도 닮은꼴이다. 고려아연 주가는 공개매수 선언 전날인 12일 55만6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후 3거래일 만인 20일 고려아연의 주가는 73만5000원으로 32.2% 급등했다. 이는 MBK·영풍 측이 밝힌 공개매수가 66만원보다 7만5000원 높은 가격이다.
SK의 경영권 분쟁 당시 소버린은 SK㈜ 주식을 1주당 평균 9293원에 사들였다. 이후 2005년 7월 SK㈜ 주식 전량을 처분할 때 5만2700원에 팔아치웠다. 소버린이 2년 4개월 동안 얻은 이익은 주식 매매 차익만 80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배당금,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을 감안하면 1조원에 이른다.
뉴질랜드계 소버린 vs 토종 MBK?
1972년 뉴질랜드에서 시작한 소버린은 이후 기존 사업을 매각하고 모나코로 국적을 바꿨다. 대주주가 뉴질랜드인인 챈들러 형제로 알려져 있어 뉴질랜드계 자산운용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MBK는 김병주 회장이 자신의 영어 이름 ‘Michael ByungJu Kim’의 약자로 만든 것으로 알려진 회사다. 2021년 11월 올라온 MBK의 2021년 상반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주주 구성은 윤종하 대표와 김광일 부회장이 각각 29.5%, MBK파트너스사주조합이 20.76%,김병주 회장 20.24%로 돼있다. 김병주 회장이 4대 주주인 셈이다. 다만 MBK는 2022년 미국 다이얼캐피털에 지분 13%를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매각했다고 밝혀 현재의 정확한 지분 구조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MBK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다. 고려아연 측은 “MBK파트너스가 운영하고 있는 블라인드 펀드 대부분은 상당수가 중국계 기업과 자본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치권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소버린 사태와 비슷한 점이다. 앞서 언급한 중국 자본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고려아연 제련소가 위치한 울산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울산시민은 20여년 전 지역기업 SK가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과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있을 때 ‘시민 SK 주식 1주 갖기 운동’을 펼친 바 있다”며 “이번에도 울산 지역사회에서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중앙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여당인 국민의힘 사무총장인 서범수 의원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사모펀드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이후 경영권 장악을 통한 핵심 기술 유출 및 국가 기간산업 붕괴에 대해 경계한다”고 말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도 이른바 ‘MBK 방지법’을 대표발의하고, 이번 사태를 국정감사에서 따져보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김광일 MBK 부회장은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MBK파트너스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2005년 설립돼 국내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토종펀드로 외국계 펀드가 아니다”라며 “중국계 펀드라는 주장은 마타도어”라고 반박했다. MBK 측은 “펀드에 투자한 유한책임투자자(LP)들의 투자 관여 및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 재산, 기술에 대한 접근은 법적으로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단독 플레이’ 소버린 vs ‘영풍과 동맹’ MBK
소버린 사태와 현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다른 점도 몇 가지 존재한다. 먼저 MBK는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과 의결권 공동 행사 계약을 맺어 단독으로 SK그룹 경영권을 노린 소버린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 영풍이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은 25.4%,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등 장씨 오너 일가와 영풍 계열사 코리아써키트, 테라닉스 등의 지분율은 7.7%로 모두 33.13%에 달한다. 최윤범 회장 측이 보유한 15.65%와 두 배 이상 격차가 벌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고려아연 우호세력으로 분류되는 현대차·LG화학·한화그룹의 지분(18.4%)을 더할 경우 최 회장 측 우호지분이 34.05%로 영풍 측을 소폭 앞선다.
이와 관련해 MBK 측은 “적대적 M&A는 기존 대주주의 협의 없이 이뤄지는 기업지배권 탈취를 의미한다”며 “지난 25년간 영풍 및 장씨 일가는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여서 적대적 M&A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광일 부회장도 “1대 주주와 합의하에 고려아연의 1대주주 지위로 들어갔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하는 바이아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소버린 사태와 달리 소액주주가 고려아연 경영진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는 홈페이지에 “고려아연은 한국 상장사 2400개 중 지배 구조와 주주 환원율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이라며 “(이번 일을) ‘동학 개미’가 회사(현 경영진)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20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이러한 ‘평행이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갈수록 예측불허의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결국 누가 자금력을 동원해 지분을 더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며 "주가가 오르고 있어 양측 모두 자금력 동원이 쉽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MBK측이 자금력에 있어서는 다소 유리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