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IT 강국 대한민국 그러나…
  • 최종윤 기자
  • 승인 2024.10.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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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아빠 고속도로 톨게이트 지나가는데 돈을 안 내고 그냥 가도 되는 거야?”

미국 플로리다에서 조지아 애틀랜타로 가족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하고 있는 중에 95번 하이웨이 톨게이트를 그냥 휙! 통과하는 것을 보고 초등학생 막내가 큰일이라도 난 듯 물어본다. “여기 오른쪽에 차에 붙어있는 스티커 보이지? 그 안에 반도체 칩이 들어있는데 거기서 자동으로 지불하게 되는 거야”, “우와! 신기하다. 어떻게 스티커로 돈을 낼 수 있지?”

IT 강국 대한민국의 상징과도 같은 IT 회사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던 서울 테헤란로 [사진=gettyimage]

막내는 온 식구들이 차 안에서 곯아 떨어져 있는데도 혼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신기해 했다. 그때가 2007년이었으니 한국의 고속도로 하이패스도 시행 초기 단계로 아직 많은 운전자가 경험해보지 못하던 시기였다. 커다란 단말기를 구입해 차에 거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얼리어답터가 아닌 나는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톨게이트 통과시에는 저속으로 달려야 인식이 되는 시절이니 더욱 그러했다.

‘역시 한국은 IT강국이야’ 당시 한국에서 고속도로 하이패스가 시행된다는 기사를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이런 최첨단의 IT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 못할텐데 한국은 정말 대단하다!” 동료가 하는 말에 온몸에 닭살이 돋는데 자부심 같은 게 치밀어 올라왔던 느낌이다. “오늘 IT 주식 왕창 사야겠네 하하하~~” 그날 주식을 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IT 강국 한국에 살고 있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IT 회사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던 서울 테헤란로 빌딩 사이를 일부러 퇴근길에 거쳐서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 아름답던 상상의 시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주식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후 미국에 주재원으로 몇 년 간 살게 되었다. 입국하는 과정부터 서류뭉치를 종이로 제출을 해야 했고 정착하는데 필요한 ID를 발급받을 때도 아침부터 줄을 서서 신청해야 했다. 실물 ID카드 발급되기까지는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전달되는 방식도 참으로 신기했다.

ID카드는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것으로 한국이었으면 당연히 등기우편이었을텐데, 그냥 집 밖 우편함에 다른 광고 전단지들과 함께 배달이 왔다. 잃어 버리거나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직접 관할 오피스로 찾아가서 수령해도 되지만 대체로 거리가 멀어서 우편으로 배송받는 게 일반적인 형태였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낙후된 처리방법에 몸서리쳤다.

그러던 어느 날, “안 차장님! 이거 한 50달러 정도 충전하시고 차 앞 유리 오른쪽 상단에 붙이세요” 사무를 보는 여직원이 손바닥 반만한 동그란 스티커를 건네면서 말을 건냈다. “이게 뭐지?” 내가 물었다. “썬패스(sunpass)에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저기서 자동으로 돈이 나가는 거예요.” ‘허걱!!’ 순간 충격 그 자체였다. IT가 한참은 뒤쳐져 있는,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미국은 IT가 있는 건지도 의심이 들 정도로 아날로그 시스템이었는데 ‘썬패스’라는 말에 놀라고 말았다.

그것도 한국의 단말기처럼 크고 묵직한 것이 아니라 아파트 주차장 스티커와 똑같이 생긴 이것을 쓱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퇴근길에 고속도로를 달릴 때 톨비가 지불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우선 한국의 톨게이트 같은 것이 미국에는 없다. 그냥 카메라가 도로 윗쪽에 길을 가로질러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2024년 요즘에는 한국도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1마일 정도 전에 톨게이트라고 돼 있는 작은 표지판을 못봤다면 여기서 돈을 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단말기가 지불인식하는 지점에서 속도를 낮추거나 할 필요가 없으며 부지불식간에 통과해버리고 만다. 애틀랜타로 여행을 가는 차안에서 막내 녀석이 신기해 하는 썬패스가 미국 전역에 약간의 형식만 다르지만 시행되고 있었다. IT 강국 대한민국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하이패스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미국에서의 첫 톨게이트 통과의식은 이렇게 휙! 하고 지나가 버렸다.

대형 IT 솔루션 기업의 부재, 스마트팩토리 구축 한계로...

2023년 7월 미국의 제조산업 전문 매체 ‘Manufacturing Digital’은 글로벌 10대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기업을 선정하고 그 기업의 개요를 게재했다. 1위 보쉬(독일), 2위 지멘스(독일), 3위 슈나이더 일렉트릭(프랑스), 4위 로크웰 오토메이션(미국), 5위 미쓰비시(일본), 6위 하니웰(미국), 7위 ABB(스위스), 8위 GE(미국), 9위 히타치(일본), 10위 에머슨(미국) 순이었다.

미국 4개, 독일 2개, 일본 2개, 프랑스 1개, 스위스 1개, 한국은 없다. IT 강국 한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스마트팩토리는 효율적인 제조공정 구축을 위해 IT에 연결된 기술을 사용하는 시설로, 장비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전송하고 산업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데이터를 분석한다. 핵심기술은 IT 솔루션으로 이것을 산업현장에 맞게 개발하는 회사들을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기업’이라고 한다.

스마트팩토리에는 3대 필수요소가 있다. 첫째는 구현하고자 하는 제조기업이고, 둘째 기업에 최적을 솔루션을 제공하는 솔루션 기업, 셋째는 양쪽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IT 컨설팅 회사 또는 기관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중소제조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가 생산의 효율성 및 자동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고자 하는, 쉽게 말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제조혁신을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회사 대표의 인식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생산공정을 자동화하는 방법을 찾게 마련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다.

아무리 대표가 혁신을 하려고 해도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회사가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고 단독으로 진행하려고 하면 머지않아 한계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솔루션 기업들의 성장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고, 시작은 중소기업 대표의 혁신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럼 솔루션 기업은 모든 제조업 대표의 요구사항을 생산현장에 부합하게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글로벌 10대 솔루션 기업을 다시 언급하자면 그들은 어떤 유형의 생산현장이라도 제조업 대표가 원하는 제조혁신의 방식을 IT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다.

이들의 자산은 사람이며 동시에 소프트웨어(솔루션)다. 잘 교육된 IT 전문가들이 현장의 요구에 맞게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것을 설치해 주는 그런 사업을 하는 곳이 솔루션 업체다. 여기서 내가 아는 한국 토종의 솔루션 기업들을 떠올려 보자면, 엠아이큐브솔루션, 휴맥스, 임픽스, 인터엑스, 에이비에이치, 유클리드 소프트, 조앤소프트 등이다.

이 회사들은 위에 언급한 글로벌 솔루션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결국 제조현장에서 원하는 솔루션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3대 필수요소에서 마지막은 컨설팅 영역이다. 제조기업은 IT를 잘 모르고, IT 회사는 제조를 잘 알 수 없다. 이들 두 그룹 사이에서 최적의 방안을 제시하고 스마트팩토리 구축 시 현장 맞춤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조언을 하고 같이 고민해 주는 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전문가 그룹은 조금은 제조기업 입장에서 솔루션 기업과 협의를 할 수밖에 없다. 돼지에게 진주목걸이가 필요 없듯이 과한 옵션을 제조현장에 적용해 구축비용이 많이 들거나 구축 이후 잘 활용하지 않는 기능이 설치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다. 또 제조기업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구축해야 할 솔루션인데 제조기업 대표가 이해를 못할 경우 확신을 주고 설득을 하는 작업도 이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역할은 부실구축, 과다구축을 방지하는 첫 번째 단추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단장님은 이 3대 요소중에서 어느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스마트제조혁신을 구축하는 대표 공공기관의 장을 맞고 있는 터라 제법 여러 곳에서 강연과 간담회 요청이 들어온다. 지난 6월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자율제조 월드콩그레스’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나온 질문이다. 당시 강연에는 1,000명 이상 되는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ICT 솔루션기업입니다!!” 나는 한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정말 나는 솔루션 기업의 기술경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스마트제조혁신을 끌고 가는 주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싶다. 솔루션 기업들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10대 회사와 버금가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사진=인더스트리뉴스]

제조기업에서 무엇을 원하든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그들 스스로 R&D를 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투자, 그러니까 솔루션 기업의 유일한 자산인 사람에 대한 투자와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 말이다. 어떤 유형의 제조현장에도 제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유연생산이 가능한 솔루션, 첨단제조를 할 수 있는 솔루션,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스마트팩토리 구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에 글로벌 제조강국을 더 빠르게 그리고 굳건히 가져가기 위해 정부의 다각도의 지원도 지속되어야 한다. 시대적으로 IT 산업의 빠른 변화가 제조 및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책 방향의 기조에는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이 지원한다’가 산업 전반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는 제조기업의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위해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상당한 지원을 했다. 스마트팩토리 3만개 구축이라는 성과가 이러한 대대적인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4년이 스마트팩토리 1.0이었다면, 앞으로 2027년까지의 4년은 2.0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야흐로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옮겨간 것이다.

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을 생산현장에 적용하는 고도화된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중심이다. 자연스럽게 솔루션 기업의 기술개발이 요구되며 그동안 준비하지 못한 기업은 사업참여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 솔루션 기업들의 경쟁력을 지난 1.0에서 양적인 부분에서 찾았다면 이제 2.0에서는 글로벌 솔루션 기업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끊임없는 사람과 기술개발에 집중했던 그런 기업들만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컨설팅을 하는 전문가 그룹도 데이터와 AI 역량을 제고시키고 스스로 실력을 갖춘 전문가들만 정부 지원 사업으로 현장에 멘토로 투입하도록 했다. 주로 대기업에서 수십년 동안 갈고 닦은 전문가들이 중소제조업의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위한 멘토의 역할을 해줄 것이며, 이것은 노령화 시대 전문 인력을 현장에 재투입해 노하우를 활용하게 하는 사회적 문제도 해결하는 중요한 효과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세대다. 누구보다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충만하기에 한국 제조업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에서 경험한 썬패스가 나의 좁은 시각을 깨우치게 했다면, 스마트제조혁신을 가능케 하는 IT 솔루션의 발전은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토양에서 글로벌 솔루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좋은 기회라고 본다. 한국 토종의 스마트제조혁신 솔루션 기업 중에서 유니콘 기업이 나오고 언젠가 글로벌 10대 솔루션 기업에 당당히 등극하는 그날을 꿈꾼다. “IT 강국 대한민국, 스마트 제조 강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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