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한 재생에너지 비중, 현실과 괴리감 있는 제도적 규제 등 개선 필요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SK E&S는 대한민국 ‘RE100’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장기간의 발전사업으로 축적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RE100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국내 시장에 직접 PPA가 허용되자 본격적으로 RE100 사업에 뛰어든 SK E&S는 현재까지 약 900MW 규모에 이르는 RE100 장기계약을 체결한 업계 1위 기업이다.
아모레퍼시픽을 시작으로 SK스페셜티, 한국바스프, LG이노텍 등 25개 이상의 기업과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 SK E&S는 국내 기업의 RE100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계약 체결 규모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녹색프리미엄, REC 구매, 자가발전 등 다양한 RE100 이행 수단 중에서도 PPA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 까다롭고 어려운 이행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SK E&S가 PPA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SK E&S 재생에너지마케팅1팀의 박영욱 팀장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우리나라 여건상 많은 기업들이 ‘녹색프리미엄’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SK E&S가 ‘직접 PPA’에 집중하는 이유는?
국내 기업의 RE100 이행에 있어, 녹색프리미엄은 이행 편의성에 장점이 있는 RE100 이행방안인 것은 맞다. 하지만 녹색프리미엄은 매번 입찰을 해야 하는 단기 이행수단이라는 것과 전기요금과 녹색프리미엄 가격이 고정돼 있지 않기에 장기적으로는 RE100 이행비용이 계속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반면, PPA는 지금 당장은 비싸더라도 장기고정가로 전력요금을 계약함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 RE100 이행비용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으며, 전기요금이 장기 상승한다면 PPA를 통해 전력요금 절감을 통한 경제적 효익 또한 발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당사는 결과적으로는 기업들이 PPA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 PPA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REC 구매, 녹색프리미엄만으로 RE100을 이행하기에는 어려운가?
당장 RE100 이행이 급하다고 하는 기업들은 REC 구매, 녹색프미리엄을 통해 급한 부분을 충족시키면 되겠지만, 외부 서플라이 체인에서 압박을 받는 기업 입장에서 장기적·안정적인 대응책은 아니다.
PPA를 통해 안정적인 물량 확보 및 이행비용의 안정화를 먼저 진행하고, 부족한 물량은 REC 구매로 일부 채워가는 전략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전의 전기요금이 장기적으로는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REC 구매만으로는 이행비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기업별 RE100 이행 전략이 있다면?
일반적 국내 대기업의 협력사이거나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 속한 기업이라면, 결국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고객사가 어디까지 허용해 주는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요구로 인해 RE100 이행 검토가 필요한 반도체 업종의 경우, 대부분 녹색프리미엄을 통한 RE100 인정해 주는데 반해, 유럽연합(이하 EU) 중심의 자동차 업종에서는 녹색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EU 완성차 제조사들이 RE100을 통한 탄소감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사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는 RE100 전략을 펼쳐야 한다.
녹색프리미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차선책으로 살펴볼 것은 기업의 공장 및 사업장 등의 유휴부지를 활용한 자가발전 태양광 설치이다. kWh당 이행비용 측면에서 일반적인 PPA나 REC 구매보다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규모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다만, 기업이 자가발전소를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기 대규모 자본이 소요된다는 것이 의사결정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PPA와 REC 구매 중 선택을 해야 하는데, 기업의 전기사용량 15~20% 수준까지는 PPA 검토를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전기사용량의 15~20% 이상 PPA를 체결하게 되면 ‘초과발전’이 발생한다.
PPA는 실시간(1시간) 단위로 전기사용량과 발전량을 비교해 PPA 구매량을 산정하게 되는데, 발전량이 전기사용량보다 많은 경우를 초과발전이라고 한다. 초과발전량은 기업이 PPA로 구매하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구매하지도 못하는 발전량에 대해 PPA를 체결할 필요가 없어서 15~20% 정도까지만 체결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다만, 고객사가 요구하는 재생에너지 구매량이 많은 경우, 태양광보다는 육상풍력을 고려하는 것이 낫다. 한 번 계약으로 대규모를 구매할 수 있어서 급하게 많은 양이 필요한 기업에게는 매력적인 자원이다. 직접 PPA가 이상적인 RE100 이행 수단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사 역시 자체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지만, 확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당사는 공급사업자로서 기업들이 접근할 수 있는 물량을 확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계약기간을 짧게 하거나, PPA와 REC 구매 중 기업이 선택하도록 옵션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서 비싼 공급자원도 기업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육상풍력이 있다. 육상풍력은 태양광 대비 가격이 높아 그동안 RE100 자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는 지난해부터 육상풍력도 기업이 구매할 수 있는 공급 자원이 돼야 한다고 판단해 가격이 높더라도 판매할 수 있도록 진행했다. 즉, 그만한 가격을 더 지불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계약구조를 만들어 올해부터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직접 PPA 진행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 국내 직접 PPA 제도는 1MW 규모 이상의 재생에너지 계약으로만 제한돼 있다. 1MW 규모를 전력사용량으로 보면, 연간 1.3GWh 이상이다. 결국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사실상 계약 자체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공장 지붕 등 유휴부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는 자가소비형 태양광발전이나 REC 구매로만 RE100을 이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많은 기업의 RE100 이행을 위해서 PPA 계약에 대한 접근이 쉬워야 하기에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을 수준으로 규모 제한을 낮추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500kW 정도로 낮추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RE100 이행에 있어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은?
RE100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한다. 기존 한전에서 전력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재생에너지공급사업자에게 전력을 구입한다는 것이 기업들 입장에서 많이 낯선 방식이고, 관련 제도나 제약사항에 대한 이해가 낮은 편이다 보니 RE100 이행의 가장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도 어려움이다. 일반적인 재화와는 특성이 다른 재생에너지는 계약시점부터 최소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1~2년 단기로도 계약하기 어렵고, 20년 장기계약이 기본인 재화이다. 이러한 특성을 모른 채 기업이 구매하려다 보니 구매 의사결정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의 성공적인 RE100 이행을 위해 필요한 정책적 개선점은?
최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하는 부분은 재생에너지 공급량 확보다. 2024년 9월 기준 36개 기업이 Global RE100에 가입했지만, 이들 모두가 RE100을 달성하기에는 현재의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으로는 부족하다. 더군다나 향후 더욱 많은 기업들이 RE100을 이행할 것으로 전망되는 바, 논의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론이 만들어져야 RE100 이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RE100을 선언한 기업들에게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대기업이나 글로벌 공급 망의 요청으로 RE100 이행을 검토하는 기업들의 경우 각 업종의 특성에 따라 RE100 이행 로드맵을 짤 수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녹색프리미엄도 일부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 가능한 곳은 단기적으로 녹색프리미엄으로 대응하다가 PPA 등 여러 가지 이행 수단을 구체화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이 좋겠다.
아무래도 현재 국내 상황이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해외 기업들도 알기 때문에 실행 방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으면, 어느 정도 현실을 감안해주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앞서 말했던 PPA 발전소 계약용량 제약과 1:N, N:1 계약이 동시에 되지 않는 등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제도적인 규제로 어려움이 있다.
기업들은 늘어나는 고객사 재생에너지 사용량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풍력발전도 검토하고 있다. 풍력발전은 용량이 너무 커 한 번에 구매할 수 없다 보니 일반적으로 1:N 계약을 고려한다. 그러나 1:N으로 계약한 전기사용자의 경우, N:1 계약을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로 인해 육상풍력, 또는 대규모 육상태양광은 전기사용량이 많은 기업만 구매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한 소규모 태양광발전소의 PPA 활용이다. 현재 국내 태양광발전소의 약 80%를 차지하는 1MW 규모 이하의 발전소들을 PPA에서 활용할 수 있다면, PPA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작용하는 여러 제도적 어려움이 효율적·실용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유연함을 시장에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값비싼 재생에너지 단가로 인해 RE100 이행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굉장히 비싸다. 현재 우리나라 탄소배출권이 값싼 이유는 사실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향후 탄소배출권이 구매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아지면, 비싸지는 재화가 된다. 불확실성이 있는 것이다.
REC 가격만 따지기에는 대체 자원도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향후 전기요금이 상승한다면, PPA가 더욱 저렴할 수도 있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기업들이 PPA를 일부라도 꼭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SK E&S가 국내 직접 PPA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당사의 경쟁력은 ‘신뢰’와 ‘진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PPA 시장은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재생에너지발전소를 특정 시점까지 공급하겠다는 확약 하에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고 실질적인 계약을 이행하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당사는 PPA 사업에 진출할 때부터 고객과의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진정성’은 공급자원에서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사업 진출 초기 발전사업자로부터 받은 임야 태양광에 대한 PPA 체결 요청을 거론할 수 있다. 임야 태양광 특성상 나대지 태양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발전소의 전력으로 향후 고객사가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고 판단해 PPA 체결을 거절한 바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단기적으로 당사의 운신 폭을 줄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근간을 쌓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RE100을 이행 중이거나 이행을 준비 중인 기업에게 조언하자면?
기업의 입장에서 RE100을 바라보는 시각을 명확하게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소명을 가지고 RE100을 이행하는 기업인지, 서플라이 체인 단계에서 꼭 해야 하는 기업인지에 대해 파악하고 로드맵을 세울 필요가 있다.
PPA는 20년까지 고정 단가를 가진 재화 하나를 확보하는 것이다. 전기요금, 탄소배출권 등이 상승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확실한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재생에너지발전은 수요가 공급보다 우위에 있는 상황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RE100 참여기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족한 공급으로 인해 향후에는 RE100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소한의 재생에너지 공급량이라도 의사결정을 통해 PPA를 경험하고, 자사에 적합한 RE100 이행 수단을 선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