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경영권 강화만을 위한 신주 발행으로 보기 어려워”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법원은 고려아연이 현대자동차그룹의 해외 계열사 HMG글로벌에 유상증자한 5000억원대 신주발행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원고 측 영풍은 1심 승소와 관련해 “정관의 법적 구속력과 주주권 보호의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최욱진)는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 무효소송 1심 선고 기일에서 “피고(고려아연)의 2023년 9월 13일 한 액면가 5000원의 보통주 104만5430주 신주발행을 무효로 한다”고 선고했다.
이번 소송은 당초 영풍이 처음 제기했으나 이후 유한회사 와이피씨가 원고 지위를 승계했다. 와이피씨는 영풍이 지난 3월 7일 이사회를 거쳐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주식 25.42%를 현물 출자해 신설한 회사다.
재판부는 “HMG글로벌은 피고가 출자에 참여한 법인이 아니어서 외국의 합작법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HMG 글로벌에 대한 신주발행은 피고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위법이 있어 무효”라고 판시했다.
지난해 3월 영풍은 고려아연이 현대자동차그룹의 해외 합작법인인 HMG글로벌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신주 104만5430주를 발행한 것을 무효로 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2023년 9월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 설립한 해외법인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5272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HMG글로벌은 고려아연 지분율 5%를 확보했다.
영풍은 해당 유상증자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해당 유상증자로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율이 32.10%로 높아져 기존 대주주였던 영풍 측 지분율(31.57%)을 넘어섰다.
반면 고려아연은 유상증자의 목적이 주력사업인 친환경 관련 신사업 추진이며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친환경 신사업을 통한 중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경영상 필요로 신주가 발행된 것으로 보이고, 경영권 분쟁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오직 경영권 강화를 위해서만 신주를 발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정관에 명시된 ‘외국의 합작법인’은 고려아연의 참여를 전제로 한 외국 합작법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고려아연 측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신주를 발행해 사업상 협력관계를 구축한 경우 이를 넓은 의미의 ‘외국의 합작법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어 “고려아연의 참여없는 외국인 투자자나 상대방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한계를 벗어난다”며 “합작법인으로 참여하지 않은 HMG글로벌에 대한 고려아연의 신주 발행은 정관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영풍 측은 이날 선고에 대해 즉각 입장문을 내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영풍 측은 “이번 판결은 경영 대리인인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회사의 정관을 위반하면서까지 HMG글로벌에 신주를 발행한 행위가 법적으로 무효임을 명확히 한 것”이라며 “정관의 법적 구속력과 주주권 보호의 원칙을 재확인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영풍은 이어 “정관에 따른 절차를 모두 적법하게 거쳤다는 최 회장과 고려아연 경영진의 잘못된 설명을 믿고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나 위법한 유상증자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기존주주들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며 “최 회장이 이러한 결과를 예견하면서도 무리하게 유상증자를 강행한 것은 우호세력을 확대해 자신의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잘못된 동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영풍 관계자는 “이번 법원의 판결은 기업 경영진이 정관과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단호히 제동을 건 사례”라며 “향후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권 보호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