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정비, 경험 누적돼야 가능한데 … 5년차 이하 정비사들, 항공사로 유출 확산"
항공 정비사 인력 절대적 부족…저연차 정비사 투입에 항공정비 품질 저하 악순환

[인더스트리뉴스 김기찬 기자] 지난해 말 발생한 잇단 항공사고로 항공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항공 정비 인력의 태부족에 항공 정비업계가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정부의 정비인력 확충 요구에 항공사들이 중소 항공 정비업체의 인력을 빼가는 사례까지 번지면서 '정비 인력 돌려막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2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국제공항에 상주하는 한 MRO(유지·보수·정비)업체는 최근 에어프레미아로 정비 인력 7명이 이직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제주항공으로 3명의 정비 인력이 유출된 데 이어 한 달 새 전문 정비인력 10명이 회사를 떠나는 사태가 불거진 셈이다. 이 MRO 업체의 정비 인력은 약 100명인데, 한 달새 핵심 인력의 10%가 빠져나가자 이 업체는 위기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다.
심지어 이 회사는 에어프레미아 측에 MRO 등 정비 부문을 일부 지원하고 있는 업체여서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사들이 정비 인력을 적극적으로 충원하고 있는 가운데 협력사의 직원까지 무차별적으로 빼가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에어프레미아는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 정비부문 경력직 직원 채용에 나선 바 있다. 최종합격한 정비직 직원은 7월에 입사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 MRO 업체 관계자는 "10~20%에 달하는 인력이 매년 항공사로 유출되는데, 중소 MRO 기업이 인력을 양성하고, 일정 경력이 쌓인 시점에 대형 항공사로 이동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어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정비 인력을 충원하려는 항공사들이 무분별하게 중소 업체들의 정비 인력들을 빼가는 만큼 업무는 물론 매출 관리에도 적잖은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항공 정비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경험이 누적돼야 가능한 고도의 기술"이라고 전제한 뒤 "항공사들이 채용해가는 정비 인력들은 보통 5년 이하의 경력을 갖고 있는 '신입' 정비사인데,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항공사에서 작은 실수라도 일으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한국 MRO 산업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국토부에 따르면 항공 정비사 자격증 발급 횟수는 2021년 1683회에서 2022년 1133회, 2023년 778회로 2년 전 대비 절반 이상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항공 정비사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잇단 항공 사고로 항공사들이 정비인력 충원에 앞다퉈 나서면서 인력 유출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
정비사 개인이 자기 의지에 따라 이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중소 MRO업체가 빠져나간 인력을 다시 채우는 것보다 인력 유출의 속도가 더 빨라 악순환이 어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요컨대 항공 정비 업무의 경우, 기술의 숙련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항공사들이 무분별하게 정비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것은 항공정비의 품질 저하 뿐 아니라 숙련도 기반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뿌리째 흔드는 파행적 행태라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항공당국 역시 구체적인 항공 정비사 육성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항공 정비인력을 충원하라고 항공사들에 압박만 가하고 있어 되레 정비인력의 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항공 정비업계 안팎에서는 최소한의 산업 윤리와 공정경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아울러 절대적인 항공 정비사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 만큼 항공당국의 정책적 압박이나 규제 대신 정비인력 육성을 위한 지원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