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중심으로 시장 확장…자율주행 시장 연 36% 성장 예상
이재명 정부, 자율주행 지원 법안 ‘가속’ … 산업 현실에 맞추나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자율주행차 상용화 경쟁이 글로벌 전선에서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실증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도심 무인 로보택시, 무인 셔틀 등의 서비스를 앞다퉈 상용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법과 제도 미비로 상업적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자율주행차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기조와도 맞물리며, 산업 현실에 법과 제도가 발맞춰가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의 주도권은 미국과 중국이 쥐고 있다.
미국의 웨이모는 현재 1500여대의 차량으로 샌프란시스코, 오스틴 등 주요 도시에서 주간 25만 건 이상의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테슬라도 이달 22일(현지시간)부터 텍사스 오스틴에서 모델Y 기반 자율주행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도 바이두, 포니에이아이 등을 중심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완전 무인 자율주행차를 운행 중이다. 바이두는 이미 1100만 건 이상의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시장조사기관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은 2024년 2737억 달러에서 2034년까지 연평균 36.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후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각각 72%, 83%가 레벨 2단계 이상의 자율주행차 기술을 탑재할 것으로 예측된다.

◆ 한국은 ‘실험실’ 수준…“기술은 있지만 법이 없다”
반면 한국의 자율주행차 산업은 제도적 뒷받침이 지지부진하며 아직도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에는 약 460여 대의 자율주행차가 임시 운행 허가를 받아 제한된 구역과 시간 내에서 시범운행 중인 상황이다.
시범운행 지역은 서울 상암, 경기 판교, 충청 세종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되며 그나마 완전 무인 주행은 현행법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즉 자율주행차라도 운전자가 반드시 탑승해야 하고,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수동 운전이 의무화돼 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낼 경우 책임 소재도 여전히 불명확하다. 운전자가 아닌 소프트웨어·센서의 결함일 경우에도 ‘운전자 책임’을 기본으로 정한 법 체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법(자촉법)’이 지난 2020년 제정됐지만 후속 세부 제도 정비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특히 현행 도로교통법상 ‘운전자’ 개념이 ‘조향장치나 제동장치를 직접 조작하는 자’로 명시돼 있어 자율주행시스템 자체는 운전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레벨4’ 이상의 완전 자율주행은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원천 봉쇄돼 있는 셈이다.
이같은 제도적 벽에 막혀 국내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한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누적 주행거리는 50만km에 그친다. 중국 바이두의 1억1000만km에 비하면 22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산업에서 선두권으로 자리잡기에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고 업계에서는 입을 모은다. 오히려 그 어떤 자율주행 선진국보다 조건에선 앞선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 회계법인 KPMG가 발표한 ‘자율주행 도입 준비 지수(AVRI)’에서 한국은 기술력·혁신 부문에서 전체 30개국 가운데 세계 7위, 인프라 부문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특히 모바일 연결 속도, 광대역 네트워크 품질, 도로포장 품질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자율주행 특허 출원 수, 사이버보안 역량, 산업 간 협력에서도 경쟁력을 보였으며, ICT(정보통신기술) 채택률과 디지털 기술 숙련도 등 소비자 수용성 측면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다만 자율주행 테스트 지역 인근 거주 인구 비율과 라이드헤일링(차량 호출) 서비스 보급률은 낮아 기술 확산 기반은 다소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재명 정부, 자율주행 지원 법안 ‘가속’…산업 현실에 맞추나
이처럼 한국의 자율주행차 산업이 기본 제반 조건은 충분히 갖춰진 것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성장을 가로막는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이같은 제도 개편 기조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도 맞닿아 있어 추후 자율주행차 분야에 가시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조속히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자율주행차량의 조기 상용화와 빅데이터 기반 산업 규제 재검토를 약속하는 등 자율주행을 포함한 미래 모빌리티를 전략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관련 법 제정 움직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율주행 모빌리티 산업생태계 활성화 지원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년 단위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 산하에 자율주행모빌리티위원회를 설치하며 실증·R&D·인증·시장진출을 지원할 전담 기관(자율주행모빌리티진흥원)을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중소기업·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지원, 실증 데이터의 공익적 활용 조항 등도 포함돼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 및 AI 학습 기반 마련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같은당 장철민 의원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병행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개정안은 자율주행차 및 UAM(도심항공모빌리티) 기술에 대해 반도체 수준의 세액공제를 적용하자는 내용으로, 현재 반도체·이차전지에 집중된 세제 혜택을 확장하자는 취지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자율주행 기술은 사실상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법적 불확실성과 높은 초기 투자 비용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제도만 받쳐주면 한국도 글로벌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이제는 (정부의) 실질적 실행력과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자율주행차는 더 이상 ‘미래의 기술’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며 “세계는 이미 무인차 상용화 경쟁에 돌입했다. 한국이 ‘실험실’ 단계에서 벗어나 이 흐름에 제대로 합류하려면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