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사회위원장직도 사퇴 표명...'실용주의 접근'과 '기회주의 처신' 반응 엇갈려
조기 대선 앞두고 중도층 소구력 끌어올리고 선거 과정 리스크 미리 잘라낼 필요성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정책 변화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대선의 최대 관건인 중도층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석과 기존 정책을 뒤집는 불안하고 기회주의적 행보라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의 행보는 중도보수의 정책 성향을 표방하며 대선 직진에 나설 태세다. 이 대표는 31일 정부·여당이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반대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추경 요구 사항에 민생지원금을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민생지원금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서도 "정부나 여당이 민생지원금 (예산) 때문에 추경을 못 하겠다고 한다면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효율적인 민생지원 정책이 나오면 (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이 포함되지 않아도) 상관이 없으니 추경을 편성해달라"며 "민생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할 경우 차등지원을 하든 선별지원을 하든 다 괜찮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추경을 통해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여권에서는 내수진작 효과가 없고 재정 부담만 가중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 대표가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폐기를 선언한 것은 자신의 핵심 정책인 '기본 시리즈'를 포기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대표는 최근 실용주의 성장론을 제시하며 자신의 핵심 정책인 기본사회 공약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직도 사퇴하겠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 시리즈를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정책 추진 후순위로 밀어넣었다는 것은 이재명 대표의 핵심 정책을 대거 바꾸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의 '노선 변경'은 지난 1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처음 확인됐다. 그는 당시 기본사회 정책은 언급하지 않고 실용주의와 성장 담론을 강조하며 기존 정책에 대한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악화한 민생을 거론하며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분배 정책에 가까운 '기본사회' 대신 경제 성장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는 "극히 일부가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 대표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민생 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분배보다 경제 성장이 중요한 시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가 기본사회위원장직마저 내려놓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점은 민주당의 대선 전략에도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기본사회 시리즈는 오늘날의 이재명 대권주자를 만든 일등공신이자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청년기본소득'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지난 대선 때는 기본 소득·금융·주택으로까지 발전시키며 기본소득을 대선 어젠다로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8월엔 당대표 연임과 함께 '기본사회'를 아예 강령에 못 박았고,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해서 본인이 직접 위원장까지 맡으며 기본 시리즈에 대한 확고한 추진 의지를 거듭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자신의 정책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에 대한 전환 의사를 밝힘으로써 민주당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 대표의 실용주의적 정책 추진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이지만 당의 열성 지지층들이 과연 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향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대표가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친화적 행보를 보이는 것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자칫 지금의 이재명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열성 지지층들이 반발하고 그 지지대열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표의 정책 변화는 현재 그가 집권이 유력한 거대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점에서 정책의 연속성과 신뢰성에 불안감을 노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최근 이재명 대표의 행보는 이견을 무릅쓰고 오로지 직진만 할 태세다. 이 대표가 이렇게 급하게 자신의 핵심 정책마저 바꾸며 노선의 변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그만한 속사정이 있다.
먼저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중도층 소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만큼 이번에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놓인 중도층의 표를 확실히 다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대표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크게 붕괴된 상태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그 돌파구를 경제회복과 성장을 통해 마련하려는 의지도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상계엄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치가 경제를 갉아먹는' 악순환이 환율 급등으로 나타나면서 성장 우선주의를 통해 혼란해진 경제 시스템을 하루빨리 회복시킬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 일정 상의 현실적인 이유도 그 배경이 된다. 대선에서 크게 논란이 될 소지가 다분한 기본 시리즈 변화 논란을 지금 조기에 점화시켜 대선에서 급부상할 리스크를 최대한 제어시킬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 시리즈가 이 대표의 상징과도 같은 정책이기 때문에 이를 대선이 닥쳐서 '폐기' 내지는 '수정'한다고 표명하면 여당으로부터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며 맹공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기본 시리즈 '말바꾸기'가 대선 전체를 관통하는 부정적 프레임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 대표로서는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에서 최대 리스크를 미리 미리 잘라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의 야당 줄 탄핵 책임론 프레임을 경제 성장 프레임으로 바꾸는 효과도 노려볼 수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이 대표가 자신의 기본 시리즈 정책 변화를 국민들뿐 아니라 민주당 열성 지지층에까지 얼마나 진정성있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느냐에 따라 민심도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