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2023년 10월 13일 오후 나는 삼성동에 있는 한 비즈니스 호텔의 미팅룸에 도착했다. 세종시에서 서둘러 출발했기에 30분 여유있게 도착해서 주변의 거대한 빌딩에서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때는 H자동차에서 나도 저들의 일원으로 근처에 있는 회사를 다녔던 터라 더욱 공감이 되어서인지 그렇게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Hi! Nice to see you again Mr. Hess!”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독일연방정부 경제기후부 국장 일행을 맞이했다. 중소제조업의 협력 방안을 주제로 미팅을 했는데 이미 2개월 정도 전부터 오늘을 위해 실무 준비를 해오던 사안이었다.
한국측에서는 나를 포함해 중소벤처기업부의 고위 공무원 일행이 그들을 맞이했으며 2시간 동안 아주 깊은 토론을 진행했다. 양측이 다양한 주제로 쉴 틈 없이 토론을 했는데 미팅룸의 열기가 아주 높았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주제에서 벗어나 개인 의견을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중 “Mr. An, we really want to be a collaboration with Korea for small and medium-size enterprises for DX” 경제기후부 헤스(Hess) 국장이 이렇게 말했다.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협력?’ 원래는 전 세계 각국의 중소기업 DX 현황에 대한 ‘공유’가 주요 주제인데, ‘협력’이라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말을 한 것이다. 내가 해석한 게 맞는지 생각을 물어보고 싶었으나 외교적 결례인가 싶어 말을 삼켰다. 그러다 바로 다음 토론주제가 이어지는 바람에 되묻지 못한 채 정해진 두 시간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 속엔 헤스 국장의 말이 계속 남아 있었고 이후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의 실질적인 방문 목적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아! 독일 정부는 한국의 중소기업 DX를 벤치마킹하러 온 거였구나!’
지금 독일의 중소제조업은 예전과 달리 원가경쟁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거나 매각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새로운 발전모델이 기존 전통적인 제조업의 성장 패턴인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시장 확보’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전환이라는 확실한 도구를 사용해 발전모델을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술 도메인 중심의 제조기술을 디지털화해 지속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 글로벌 제조산업에서 우위를 가져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조 디지털전환은 제조데이터의 활용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데, 독일은 이미 2012년 Industrie 4.0을 시작하면서 디지털화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이를 통해 중소제조업의 디지털전환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독일 주도의 디지털화가 성공하려면 다양한 적용사례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독일은 자국 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적용시켜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점점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개체 수가 줄어듦에 따라 그 시선을 외부로 돌려 글로벌시장에서 디지털화를 적용시킬 우수한 테스트베드를 찾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여기에서 찾으면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한국의 스마트팩토리 사업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부 산하에 민관합동 스마트공장 추진단이 꾸려지면서부터다. 그 이후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돼 국가의 모든 스마트공장 사업을 총괄하는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발족됐고,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2022년에는 스마트공장 보급 3만개를 달성해 명실공히 그 기반을 다지는데 한몫을 했으며, 2023년부터는 좀더 높은 단계의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는 고도화 추진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체계적인 정책실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자금투입이 전제되겠지만 나는 여기서 한국의 풍부한 중소제조업 기반을 중요한 이유로 꼽고 싶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수십년간 대기업의 1차, 2차, 3차 협력사로 존재해 왔다.
대기업의 지독한 품질경영과 원가절감 요구에 영혼까지 갈아 넣어가며 기업을 성장시켜왔다. 대기업들이 글로벌 강자로 성장하면 중소기업도 동반성장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결과다.
그런 배경하에 최근 글로벌기업에서 한국의 제조기업을 협력업체로 삼기 위해 노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실제로 내가 방문했던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테슬라와 같은 글로벌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한국의 중소제조기업의 가치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와중에 국가의 스마트제조혁신 정책방향은 긴 시간 동안 일관되게 시행돼 왔고, 가시적으로도 3만개 스마트공장 구축을 달성했다. 지금은 고도화 추진의 한중간에 서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에서 한국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글로벌 TOP3의 자동차메이커가 있다. 그들 아래에는 잘 성장한 수천 개의 협력업체, 즉 중소제조기업이 전국에 퍼져있다.
이 뿐일까! 한국에는 글로벌 TOP 수준의 반도체 기업이 있다. 그들 아래에도 마찬가지로 잘 성장한 수천 개의 협력업체가 전국에 분포돼 있다. 하나 더 예를 들자! 한국에는 글로벌 최대의 배터리 생산기업들이 있다. 그들 아래에도 마찬가지로 잘 훈련된 중소제조기업이 무수히 많이 한국땅 전역에 분포돼 있다. 또! 조선업은 어떤가! 철강산업은 어떤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순간 ‘유레카!’ 나는 독일의 헤스 국장이 왜 한국에 와서 굳이 나를 만나고 중소벤처기업부의 고위 공무원과 미팅을 하려고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한국 대기업의 제조 경쟁력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잘 조직화된’ 중소기업이 전 산업군에 걸쳐 다수로 포진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이 하고자 하는 디지털전환의 테스트베드로 가장 최적의 국가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독일 내부의 산업변화가 그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게 한 것이다.
조금 진정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그럼에도불구하고 나의 Insight, 그러니까 독일 정부와 미팅을 마친 후 얻게 된 Insight가 틀림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니 확신이 아니라 실제 그런 증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의 방문 이후 한달 정도 만에 내가 독일에 가서 독일 정부 및 산하기관과 협력 MOU를 체결한 것이 그것이다.
작년 5월 즈음에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월드뱅크(세계은행) 워싱턴 본부입니다.” 내용인 즉슨, 월드뱅크 본부 및 글로벌 지사에서 한국의 스마트팩토리를 벤치마킹 해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왔고, 본부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사에서 한국을 방문해 설명도 듣고 우수업체도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기꺼이 준비하겠다는 회신을 보내고 두달 뒤에 50여명의 세계은행 맴버들이 방문했다.
내가 한국의 스마트팩토리 구축현황과 정부의 정책방향을 브리핑했고 발표가 끝난 뒤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행사 마무리로 기념사진을 찍고 난 뒤에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대화를 요청해 왔다.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최측의 안내가 없었으면 거기서 한참을 설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우리는 2023년 9월에 ‘신 디지털제조혁신전략 2027’을 공표하면서 2027년까지 자율형공장을 구축하는 전략을 비롯한 다각도의 새로운 차원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한국 중소기업 글로벌 경쟁력이 디지털전환의 거대한 물결에 올라타서 세계시장 어디로든 힘차게 뻗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계의 이목이 한국의 스마트팩토리에 집중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