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재료의 역사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물질이 출연해 인간의 생활을 바꿔온 역사다”
일본 과학 저널리스트 사토 겐타로가 집필한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의 문구를 인용한 대사다. 구석기로 시작해 신석기, 청동기를 지나 철기까지. 새로운 소재의 발견을 인류 문명에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최근 세계가 주목하는 탄소섬유(Carbon Fiber)는 인류를 다음 단계로 이끌 미래 소재로 손꼽힌다. 일각에서는 탄소섬유를 향후 철을 대체할 ‘차세대 산업의 쌀’이라고 부를 정도다. 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면서 강도는 약 10배나 된다. 장점도 많고, 쓰임새도 크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산업 전반에서 철을 대체하는 소재로 탄소섬유를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탄소섬유가 주로 사용되던 분야는 우주·항공 분야다. 실생활에서는 스포츠·레저 등의 분야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탄소섬유가 가진 유일한 단점은 비싸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용화까지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기존 대비 투자비 최소 6배↓, 용량 구애 없이 10분이면 제작 가능
탄소섬유가 가진 유일한 단점 개선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기술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 국내 기업이 새로운 공법 적용으로 탄소섬유 상용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최초로 용액침수 성형공법인 TLP(Thermo Liquid Pool) 공법을 개발한 카본헥사가 그 주인공이다. 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카본헥사는 탄소섬유강화 복합재를 성형해 소재부품 및 장비 등을 제조하는 전문기업이다.
카본헥사 김준석 대표는 “철보다 가볍고 튼튼하며, 탄성은 철의 7배 수준인 탄소섬유는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며, “부가가치는 매우 높았으나 제조비용 및 제조시간이 철강보다 5.7배 높아 실생활에서 쉽게 접하기에는 어려운 소재였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처음 탄소섬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다리차였다. 49층 높이의 빌딩에서 재난 발생 시 철강 재료로는 한계가 있다. 일정 높이 이상에서는 휘어버리기 때문에 구조가 불가능하다. 이 한계를 깰 수 있는 대안이 탄소섬유강화 복합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다.
그러나 높은 생산단가와 낮은 사업성으로 인해 사업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이에 비효율적인 생산공법을 개선하고자 했고, 2015년 TLP공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후 지속적인 세부 개발 끝에 최근 상업화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기존에 탄소섬유 성형을 위해 사용되던 ‘오토 클레이브’, ‘HP-RTM’ 등의 건식공법은 고가의 설비구축과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며, “특수용액을 통해 탄소섬유 성형하는 습식 방식의 TLP공법은 이러한 단점들을 모두 개선한 획기적 공법”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에 의하면, TLP공법의 가장 큰 장점은 대량 및 대형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카본헥사가 개발한 특수용액에 탄소섬유를 넣고, 가열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제품 모양에 어떠한 제약도 발생하지 않는다.
생산 시간의 경우 용량에 상관없이 TLP공법은 10분이면 생산이 가능하다. 기존 오토 클레이브 공법은 용량에 상관없이 240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개선이다. PCM/RTM 공법 역시 100t 기준 180분이 소요된다. 투자비용도 오토 클레이브의 6배, PCM/RTM의 10배를 절감할 수 있다.
김 대표는 “기존에 건식 공법을 사용하던 이유는 에폭시가 유분에는 경화가 안되기 때문”이라며, “자사는 특수용액을 개발해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방식보다 제품의 강도도 더욱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비열이 높은 유체를 가열해 그 속에 침수시켜 탄소섬유강화 복합재를 성형하기 때문에 온도제어가 용이하며, 열전도가 매우 뛰어나다”며, “기존 공법은 온도제어 한계 때문에 생기는 불량률과 강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자사가 개발한 공법은 열이 고르게 분포돼 우수한 품질의 복합재를 생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식, 피로누적에 자유로운 반영구적 소재
“자동차, 건축 분야뿐만 아니라 풍력발전기의 날개, 수상태양광 지지대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까지 적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기술개발을 통해 탄소섬유 단점을 개선한 카본헥사는 자사 제품의 활용도를 넓혀가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이 사용되던 산업에 자사 제품을 적용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 산업이 가지고 있던 단점을 개선할 수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탄소섬유 적용 시 얻게 되는 이점은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탄소섬유는 항공, 우주 등 매우 가혹한 환경에서 사용되며, 이미 우수성을 검증받은 소재”라며, “부식이 발생하지 않고, 피로누적 및 강도저하도 없기 때문에 장시간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는 태양광, 풍력 등의 발전소 구조물로 매우 적합한 소재”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한 검증도 끝마쳤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수상태양광 구조물 지지대 및 부력체 소재로 대체하기 위한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통해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기존 부력체와 비교했을 때, 부력체 체적을 45% 이상 감소시켜도 안정성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친환경적인 요소까지 가미,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적용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카본헥사의 탄소섬유 기술과 국도화학의 에폭시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김 대표는 “탄소섬유는 어떤 범용소재와 핵심소재를 사용하느냐가 핵심”이라며, “테팔 후라이팬에 사용되는 코팅(에폭시)을 사용해 환경에 안전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국내 카텍에이치라는 기업과 협업을 통해 자사 폐소재를 100%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는 자원순환 사이클 시스템도 구축했다”고 밝혔다.
탄소섬유는 친인간적인 소재로도 불린다. 대부분의 산업사고가 무거운 중량물을 설치, 운반할 때 발생한다. 철보다 약 4배 가벼운 탄소섬유는 현장 근로자의 중량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안전사고 발생률도 현저히 적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는 이미 장점을 발휘하고 있다. BMW 등의 기업들이 자사 전기자동차에 탄소섬유 프레임을 적용해 연비를 대폭 향상시켰다. 알루미늄 프레임을 적용하던 준중형차에 탄소섬유강화 복합재 적용 시 최대 30% 경량화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1,380kg 무게의 차체가 970kg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탄소섬유 시장, 연평균 11% 성장… 활용분야 무궁무진
연평균 11%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탄소섬유 시장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공법뿐만 아니라 소재 가격도 하락세를 이어가며 다양한 산업에서 철의 대체제로 각광받고 있다. 강도 역시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김 대표는 “최근 개발되는 탄소섬유 실은 과거와 비교하면 강도가 2배 이상 높다”며, “강도는 높아진 반면,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철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최근 탄소섬유 시장동향을 밝혔다.
김준석 대표는 이러한 탄소섬유 시장에서 카본헥사가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혁신적인 공법을 통해 탄소섬유 상용화의 길을 연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4월 탄소소재 산업 연대와 협력 협의체인 ‘탄소소재 융복합 얼라이언스’를 출범, 본격적인 수요확대 및 신시장 창출 지원에 나섰다. 탄소섬유 시장과 카본헥사의 밝은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맨홀 커버, 방탄판, 탁자 및 의자, 자동차 번호판 가드 등 산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무리 없이 탄소섬유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국내를 넘어 해외로, 전 세계 혁신에 카본헥사가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향후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