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너 무슨 전과 가지고 있니?” 친구 철중이가 묻는다. “어, 나는 표준전과야” 내가 대답한다. “그래? 그럼 나도 표준전과 살까? 아니면 동아전과 살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친구와 함께 신학기 책을 받아서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나눈 이야기다. ‘제조데이터 표준’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표준전과가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아무튼 이번 칼럼은 ‘표준’이다 그 아득하고 어려운 길로 들어가 보려 한다. 표준전과처럼 말이다.
표준화된 데이터, 영업과 경영 단계까지 활용
요즘 독일 등 유럽과 미국의 데이터 표준 관련 전문가들이 자주 쓰는 단어가 있다. Interoperability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상호운용성’으로 번역이 되는데 정보 관련 기기간 또는 여러 명의 이용자 관계에서 정보를 원활하게 교환,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한 A 중소제조업의 영역에서 해석하자면 A사는 MES, ERP등 구축하고 사내의 많은 정보를 디지털화했고, 뿐만 아니라 실시간 생산 데이터도 목적에 기반해 정돈된 형태로 서버에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시간을 절약하고 생산 효율성을 가져오는데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해외바이어가 A사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회사에 제품설명서와 그동안의 품질 이력을 데이터로 제공해달라고 요청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예전 같으면 직접 한국으로 날라와 공장을 방문해 살펴보는 게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조데이터 제공으로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해졌다. 특히 A사는 주 고객사에 맞는 데이터 표준을 적용해 신속하고 빠르게 응대할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 표준화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업과 경영의 단계까지 활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내 공장에 설치된 장비간의 데이터 상호운용성에서부터 자기 공장의 데이터와 고객사 공장 간 데이터 상호운용성까지 확보하는 것은 스마트공장 성공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표준화된 데이터는 공장 내에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회사와 같은 표준을 사용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회사도 같은 표준을 사용하고... 이러한 데이터 상호운용성이 대다수 공장에까지 서로 적용되면 그것을 우리는 ‘표준’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표준’은 시장논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수 기업에서 같은 표준을 사용하게 되면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고, 다른 군소 표준들까지 잠식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몇몇 선진국가들은 본인들이 사용하는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국가가 표준의 영역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면 자국 산업의 글로벌 진출이 수월해지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표준을 주도하는 국가에서 기술적 우위를 적용해 표준을 만들고 타국가가 따라오게 하는 등 폐혜적 측면도 지적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결국 표준은 시장 논리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라 한 국가의 의도된 방향으로 몰고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조데이터 표준화, 중소제조업 디지털역량 성장 계기
그럼 이제 한국 중소기업 현실을 보자.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은 국내 중소기업 대상 스마트팩토리를 지속적으로 보급하고 관리하고 있다. 중심에는 스마트제조솔루션을 도입 지원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제조 소프트웨어 및 장비업체는 데이터 표준없이 각기 다른 명칭/형식으로 데이터를 정의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그러다보니 이후 다른 업체가 유지보수를 해야 한다거나, 새로운 설비가 들어와서 연계를 해야 할 경우, 현장 확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돼왔다.
한국의 스마트 솔루션 기업들은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에 힘입어 성장하기도 하고, 많은 새로운 업체도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시스템에서 표준화를 끌고 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업체 나름의 기술 노하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외산솔루션이 도입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대로 구축해온 것이 사실이다.
독일은 AAS(Asset Administration Shell, 자산관리쉘) 표준을 Indurstry4.0 표명과 동시에 제조데이터 표준으로 삼고 EU를 시작으로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2023년 하반기에는 AAS를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제조장비 및 부품 등의 명칭과 제조단에서 생성되는 압력, 온도 등의 단위를 통일시키고 입력 방법 등을 촘촘하게 규정하고 있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은 AAS의 한국 도입 또는 이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표준을 만들고자 수년간 노력하고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표준화 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없애려고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표준의 적용은 기술의 트렌드에 맞게 선도하는 국가와 협력하고, 개별공장의 표준화 사업은 기구축된 스마트팩토리의 표준화하는 사업 방향으로 시행하고 있다.
정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도화 기업 중심으로 표준화된 데이터 체계를 적용하게 해 실증을 우선 추진하고, 점차적으로 다른 제조 공장에까지 확대하는 전략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작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게 되면 글로벌 데이터 표준과 상호유용성이 가능해지고 우리나라의 중소제조업의 디지털역량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표준의 진화도 잊지 말아야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사회자가 묻는다 “감독님은 영화감독이신데, 그 어려운 개념인 양자역학에 대해 어떻게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셨는지요?” “감독님은 물리학자이신가요?” 놀란 감독이 대답을 한다 “나에게는 노벨물리학상을 받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킵손 박사가 있다. 물리학에 문외한인 나에게 킵손박사는 아주 쉽게 잘 설명해 주었다.”
나는 표준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지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이해하는 게 어렵다. 그렇게 많이 듣고 배우고 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이 표준이다. 왜 크리스토퍼 놀란의 킵손 박사 같은 사람이 나에게는 없는가! 표준이 무엇인지 기술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런 전문가 말이다!
표준의 진화!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 세상 만물의 이치와 사람의 근원적인 부분에서 해석하고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조데이터 표준’은 이 분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리일까? 단언컨대 내 대답은 ‘그럴 수 없다’다. 표준은 진화할 것이며 그래야만 생명력이 있다. 거의 고속도로 건설표준이 지금의 그것과 같을 수 없듯이 제조데이터 표준도 딱!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

[사진=인더스트리뉴스]
그러면 왜 우리는 지금 제조데이터 표준이라는 정부 사업을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 주요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절삭 장비나 사출 장비에서 나오는 모든 데이터를 표준에 맞게 구축하는 실증사례를 정부 또는 지자체 연구기관별로 적지 않게 내어놓고 있다. 장비 데이터의 세세한 부분까지 총망라해서 표준화 샘플을 만들고 있으며, 결과치를 보면 여전히 ‘진리’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다른 전문가의 의견이다.
그래서 또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왜 정부는 이런 곳에 표준화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인가?’ 표준의 진화라는 진리 앞에서 표준화 샘플을 만들어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이것을 따라서 데이터를 구축하라고 안내하는 것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된 좋은 사례가 있어서 소개한다. 어느 C 중소기업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마침 판교의 IT 회사 대표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IT 회사 대표가 질문을 한다 “MES 화면 좀 볼 수 있을까요?” C 기업 IT 담당자가 열어놓은 스크린에는 다양한 공장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고, IT 회사 대표의 질문에 맞추어 담당자의 손놀림이 거침없이 움직인다. 누가 봐도 그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능숙한 모습이었다.
IT 대표는 “굉장히 잘 정리되어 있네요, 데이터 정렬 표준과 사뭇 다른 구성인데 공장 사정에 맞추어 잘 조정된 것 같습니다”라고 발했다. 이에 C 회사 대표는 “네, 5년 전에 MES를 도입 했을 때는 정해진 표준에 맞춰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표준을 우리 공장에 맞춰 변형하고 최적화했다. 지금은 저 MES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표준의 진화가 실례로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표준모델을 만들어 많은 제조업에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일이면 다른 형태로 진화할 텐데 말이다.
‘진리’라는 측면에서 ‘제조데이터 표준’을 이야기하자면 아주 단순하게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제조데이터를 그 공장의 대표나 임원진들이 원하는 목적에 맞추어 모아야 한다. 데이터를 모을 수 없다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기본이며 근간이 아니겠나 싶다.
두 번째는 모아놓은 데이터를 기업의 비즈니스로 활용해야 한다. 목적 기반의 데이터를 활용해 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우리 제품을 구매해주는 외부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을 디지털 기반의 데이터로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중소기업의 직면한 디지털화는 제조데이터 관점에서 다시 해석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엄격한 표준에 얽매여 ‘진리’를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러한 불확실한 시도에 대해 이 모든 것이 협력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 과장! 오늘 생산1부 불량이 많은데 원인을 파악해 보세요!”, “오늘 생산 계획이 몇 개지?”, “생산1부 김 반장이 오늘 병가입니다. 그래서 고장난 설비를 고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반응기 온도가 잘 나오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여기 구멍으로 보이는 불꽃이 파란색을 띠면 그때 가열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 지켜봅시다. 바로 지금이야! 버너의 불을 끄도록!“, ”장비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보전반을 불러서 원인을 파악해 봐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왜 이렇게 불량이 많은지 도대체 알 수 없네요, 날씨탓인가…”
언제까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인가! 이 질문에 맞는 데이터가 존재한다면 몇 번의 클릭클릭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