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랜딩기어는 왜 내려오지 않았나
  • 성기노 기자
  • 승인 2024.12.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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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1차 조류충돌이 사고 원인일 가능성 언급했지만 '복합 요소' 가능성
3중 안전장치 랜딩기어와 버드스트라이크 직접 연관 규명 필요
무안공항 개항 17년만에 매일 국제선 운항 시작 한달도 안돼 참변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181명 승객 가운데 179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여객기는 착륙 직전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충돌’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이후 관제탑에 메이데이 구조요청 신호를 보낸 뒤 2분여 만에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 시설물에 충돌하면서 그대로 폭발했다.

사실 한국은 그동안 항공 안전국으로 인식됐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몇 년간 항공 안전 기록이 양호했던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며 “한국 땅에서 일어난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항공업계는 지난 2013년 아시아나항공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사고(3명 사망) 이후 안전에 투자를 거듭하며 11년 동안 ‘무사고’를 유지했지만 이번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 참사와 마주했다. 그래서 이번 제주항공 참사는 국민들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현재 사고 원인을 두고 조금씩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부분들이 많다. 제주항공 참사의 사고 원인을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눠 접근해 본다.

현재까지 동영상과 생존자, 목격자 등의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보면 새떼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의한 기체손상이 유력한 외부적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제주항공 착륙 직전의 한 동영상을 보면 왼쪽 부분에서 흰 연기가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는 새떼가 항공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 타는 과정에서 나온 연기로 추정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29일 전남소방본부와 국토교통부는 초기 조사 결과를 통해 조류 충돌 가능성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발표했다. 또한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승무원 1명도 “착륙 직전 한쪽 엔진에서 연기가 난 뒤 폭발이 있었다. 조류 충돌로 추정된다”고 진술했다.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 산산이 부서진 여객기 잔해가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 산산이 부서진 여객기 잔해가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버드 스트라이크만으로 항공기의 양쪽 엔진이 모두 ‘소실’돼 추락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올해 초에도 인천국제공항에서 버드 스트라이크로 엔진이 불타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미 연방항공청(FAA)의 1990~2023년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미국 내에서 야생동물이 민간 항공기에 충돌했다는 신고 건수는 1만9367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조류 충돌은 1만8394건으로 전체의 94%에 달했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이렇게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비행기가 양쪽 엔진이 모두 고장이 발생해 대형 참사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버드 스트라이크에 의한 1차 외부 충돌과 랜딩기어같은 내부의 기체 결함이 복합적으로 발생해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랜딩기어는 비행기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레이크가 랜딩기어와 결합돼 있기 때문에 비상착륙시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으면 동체착륙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해 기체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랜딩기어는 유압식으로 작동하지만 최악의 경우 수동으로 전환해 기어가 스스로 내려올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경우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아 제동력을 완전히 상실해 대형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행기 엔진 고장과 랜딩기어의 고장이 직결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어 랜딩기어 고장이 원인 규명의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기체의 내부결함 원인을 높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나왔다.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하루 만에 제주항공의 같은 기종 여객기가 랜딩기어 이상으로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주항공은 이륙 전에는 장비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고 운항 도중 이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30일 제주항공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37분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제주행 7C101편에서 이륙 직후 랜딩기어 이상이 발견됐다. 제주항공은 탑승 승객 161명에게 랜딩기어 문제에 따른 기체 결함을 안내한 뒤 회항했다. 제주항공 측은 “김포공항에서 항공기를 교체한 후 다시 운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항한 항공편에 투입된 기종은 보잉의 B737-800으로 전날 참사가 벌어진 기종과 같다. 제주항공은 총 39대의 여객기 중 37대를 이 기종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주항공 사고 기종인 B73-800의 랜딩기어가 만성적인 고장이 발생했는지, 아니면 제주항공의 정비불량 때문인지 향후 조사결과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제주항공 항공기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비상 동체착륙을 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연합뉴스
제주항공 항공기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비상 동체착륙을 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연합뉴스

그런데 제주항공의 비행기 정비가 그간 매끄럽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 참사가 나기 이틀 전인 지난 27일 제주항공의 동일 기종에 탑승했던 한 승객은 “당시 엔진 시동이 몇 차례 꺼져 불안해 승무원에게 알렸지만, 별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비행기는 1시간 지연 끝에 출발했으며 운항 중 추가 문제는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제주항공 사고 비행기가 랜디기어를 수동으로 내려 착륙을 시도할 만큰의 시간적 여유가없었는지도 원인 규명의 중요한 열쇠다. 조종실이나 객실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맞아 동체로라도 착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기체의 치명적 결함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종사가 복행해 다시 2차 시도에서 랜딩기어도 내리지 못하고 급박하게 활주로에 착륙할 수밖에 없었던 ‘치명적 상황’ 규명이 이번 사건 해결의 또 다른 열쇠다.

한편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한 항공안전의 미비점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무안국제공항의 버드 스트라이크 발생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무안국제공항의 버드 스트라이크 발생 건수는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0건이었다. 이 기간 무안공항을 오간 항공기는 총 1만 1004편으로 발생률은 0.09%로 추산된다. 발생률로 따지면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무안국제공항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전) 아침에 새떼가 (공항 활주로 위) 하늘을 덮을 정도로 날아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새떼를 목격한 직원들의 목격담을 전하며 “직원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많은 새떼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공항 밖에서 갑자기 날아들었다. 평소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고 당일 공항의 새떼가 이례적으로 많았던 탓에 관제탑에서도 제주항공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후 2분여 뒤 바로 동체착륙 폭발 사고가 났다. 새떼가 이례적으로 많이 출몰하는 과정에서 공항의 ‘비행 정지’나 다른 공항으로의 회항 유도 등의 선제적 조치가 이뤄졌는지 밝혀야할 대목이다.

29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이 파손된 기체 후미 부분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이 파손된 기체 후미 부분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각 공항에는 조류퇴치 전담인원 및 장비를 상시 확보‧배치하고 있는데 무한국제공항이 그 ‘규정’을 제대로 지켜 이례적으로 많이 날아든 새떼들을 적절하게 분산시켰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무안국제공항의 활주로 길이가 짧아 동체착륙 시 충분한 제동거리를 더 확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나오고 있다. 무안공항 활주로는 2.8km로 인천국제공항 3.8m보다 훨씬 짧다.

그리고 일부 네티즌들은 제주항공 비행기가 공항의 외벽에 충돌했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벽이 아니라 일종의 ‘방호 시설물’에 충돌한 것이 더 큰 충격으로 이어져 폭발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만약 항공기가 비교적 약한 일반 외벽이었다면 그것을 뚫고 통과해 더 가다가 스스로 멈췄거나 바다에 빠졌다면 강한 충돌에 의한 폭발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애초 공항 설계상의 안전 확보 미비점도 이번 대형 참사의 원인 규명에서 필요한 대목이다.

무안국제공항은 2024년 12월 초 개항 17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선 정기 노선 매일 운항에 나섰다가 대형 참변이 발생했다. 2007년 서남권 거점 공항으로 문을 연 무안국제공항은 이용객이 많지 않아 개항 초기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 2009년에는 공항 가동률이 1.3%에 불과해 연간 71억 손해가 발생하고 광주 공항과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관계당국이 지시하기도 했다. 그 후 무안공항은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선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가 지난해 3년 만에 재개하기도 했다.

공항 활성화와 서남권 해외 관광 수요 흡수 차원에서 개항 후 처음으로 국제선 매일 운항을 시작했지만 한 달도 못돼 예기치 못한 대형 참사가 났다는 것은 충분한 안전 검토와 비행 사례 축적 없이 서둘러 ‘개항’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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