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행동 정상회의' 폐막...누가 AI 세계 표준을 선점할 것인가
  • 성기노 기자
  • 승인 2025.02.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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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AI정상회의서 안전·윤리 강조…'딥시크' 충격준 중국은 서명
미국 "우리 AI 기술이 세계 최고 표준 되도록 노력할 것" 전쟁 선포
한국은 유상임 과기장관이 참석...AI 선도국의 '병참기지' 전락 우려
프랑스 파리에서 11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 주요 참가자들이 폐막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인공지능(AI) 행동 정상회의가 '파리 선언문'을 채택하고 지난 11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AI 행동 정상회의는 AI 글로벌 거버넌스를 집중 논의하는 자리다. 2023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AI 안전성 정상회의’와 2024년 5월 한국에서 열린 ‘AI 서울 정상회의’에 이어 세 번째로 프랑스에서 개최된 정상회의다. 이번 회의에는 전 세계 87개 국가에서 참여하고 기업 국제기구 시민단체 등 총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AI 시대를 대비해 세계 각국이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등 인류의 컨센서스를 한 데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AI 선두국가인 미국이 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AI를 인류의 공동번영 모색이 아니라 선진국들의 기술패권전쟁으로 변모시킬 가능성을 노정했다는 점에서 선언문의 의미도 퇴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먼저 정상회의의 주요 결과물을 살펴보자. 엘리제궁에 따르면 프랑스와 인도, 독일, 한국 등 58개국과 유럽연합(EU), 아프리카 연합 집행위원회 등은 11일 회의 폐막 후 '사람과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AI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는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제시했던 안전•혁신•포용이라는 가치에 기반해 AI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공익을 위한 AI’, ‘지속 가능한 AI’가 제시됐다.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Action)을 개시하자는 국제사회의 의지가 함께 담겼다.

구체적 행동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AI 플랫폼 및 인큐베이터 출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AI 에너지 관측소 설립 △일자리에 대한 AI 영향 네트워크 등이 제시됐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 폐막 세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 폐막 세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이 선언문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정상회의의 의미와 목적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이 AI 경쟁에서 바짝 쫓아오는 상황에서 AI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미국이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공동 선언문에 동의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행사 이전부터 나왔다.

이날 폐막 세션에서 연설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미국이 AI 분야의 선두 주자"라며 "미국 정부는 이 위치를 계속 유지할 계획이며 미국의 AI 기술이 세계 최고의 표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U의 디지털서비스법 등 미국 빅테크에 적용되는 규제를 거론하며 "AI 부문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막 도약하려는 혁신적인 산업을 죽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파고'의 딥마인드를 배출하고 2023년 AI 안전 정상회의를 처음 개최한 영국 역시 서명에 불참했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이니셔티브에만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파리 선언문은 영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럽으로서는 미국 주도의 AI 시장에 유럽이 공동으로 대응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국가가 공동 선언문에 불참하는 등 만족한 결과물을 내진 못했으나, 행사를 주최한 프랑스나 유럽으로선 미·중에 뒤쳐진 AI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좋은 자극제가 됐다는 것이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인베스트AI 이니셔티브'(InvestAI Initiative)를 발표해 향후 AI 개발에 총 2천억 유로(약 300조원) 규모의 민간·공공자본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EU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제3차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EU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과 중국이 앞서 나가고 유럽은 뒤쳐졌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AI 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기업 활동을 돕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도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9일 TF1과 인터뷰에서 "AI에 향후 1천90억 유로(약 164조원)를 투자할 것"이라며 프랑스 입장에선 미국이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5천억 달러와 비슷한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의 AI 산업 판도는 미국과 중국이 리드하고 있고 유럽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주요국들과의 경쟁에서 저만치 밀려난 형국이다. 현재 AI 투자를 선도하는 주요 국가는 미국·EU(유럽연합)·중국·영국·일본·캐나다 등이다.

지난해 7월 9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간한 '글로벌 정부·민간 분야 AI 투자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의 AI 투자규모에서 미국은 60%(873억달러)를 넘는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112억달러)과 유럽(134억달러)은 비슷한 투자 규모를 보이지만 중국의 AI 기술이 훨씬 앞서 있어 향후 경쟁력 면에서도 유럽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상위 10개국엔 들지만, 실제 AI 투자 액수는 일본·캐나다 등에 밀리면서 주요국에 비해서는 크게 열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AI 산업은 미국이 원톱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중국이 '딥시크' 등으로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추고 맹추격하고 있어 미국이 '시장 장악'을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다. 여기에다 유럽도 미국의 '표준화'에 이끌려 가지 않고 독자적인 개발에 나설 채비여서 향후 AI 판도는 미국 중국 유럽 그 외 '군소국'의 치열한 4파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폐막 세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강조한 것은 "미국의 AI 기술이 세계 최고의 표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AI 기술의 패권을 미국이 독점하겠다는 야심차고 '탐욕스러운' 계획이다. 

특정 기술이 개발되면 세계 주요국들은 그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표준'이 곧 기술 패권이며 시장 장악의 절대반지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 1793년 프랑스는 미터법을 만들어 세계 표준으로 이끌었지만 미국은 지금도 '심정적으로' 프랑스의 표준화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왜 하필이면 프랑스인가, 기준이 과학적이지 않다"며 미터법 도입을 포기하다가 1975년에서야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승인'했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인들에게는 야드파운드법이 훨씬 익숙하다. 

이번에 미국이 AI 정상회의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려는 이면에는 AI가 인류의 문명을 대변혁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그 전환점의 주도권을 쥐면서 추격해오는 중국 유럽을 미국 표준의 '하위'에 두겠다는 야심찬 국가 전략에 근거한 것이다. 

이렇게 강대국간의 AI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닌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대신 참석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유상임 장관은 정상회의 기간 동안 미국 EU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과 양자 면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한국 기업은 네이버 LG 등이 참여했다. 한국은 정치의 불안정으로 세계 각국의 치열한 AI 경쟁에서도 밀리는 형국이 돼 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이 AI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 한국은 변방의 '병참기지'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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