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의 탈을 쓴 이리 2, ‘DPP 디지털제품여권’
  • 최종윤 기자
  • 승인 2025.02.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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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Passport!!” 2007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7년전 나는 회사의 미국주재원으로 선발이 되어서 4년반 정도를 미국 남부에서 근무하게 됐다. 가족들과 같이 미국에 입국하는터라 모든 과정을 내가 챙겨야 하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자식이 3명이나 되니 말이다.

[사진1] 디지털 제품 여권의 사진자료, QR코드 링크로 들어가면 해당 제품의 모든 기록이 담겨져 있는 인터넷 화면이 연결되는 구조다.

우리 식구 다섯 명이 하나의 입국심사대에 우루루 서 있었다. 아직 어린 둘째, 셋째는 세상 모르게 재잘대고 있었고 나와, 아내 그리고 중3인 큰딸은 주변의 분위기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때 심사부스에 앉아있는 입국심사관의 우렁찬 외침 “Passport!!!”

DPP는 Digital Product Passport의 약자로 한글로는 ‘디지털 제품여권’이라는 뜻이다. 방금 든 생각인데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디지털 제품여권’, ‘디지털제품 여권’, ‘디지털 제품 여권’. 첫 번째는 ‘제품여권’인데 디지털로 된 것, 두 번째는 ‘디지털제품’인데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디지털로 된 제품인데………’ 뭔 얘긴지 알 수 없네...

아무튼 이제 모든 제조품이 다른 나라로 갈 때(수출될 때) 해당 제품의 여권을 제시해야 통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나라에 입국하려면 종이로 된 여권을 반듯이 제시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제품여권은 종이여권 형태가 아닌 디지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사진1]은 디지털 제품 여권의 사진자료인데 요즘 우리가 여러 곳에서 자주 사용하는 QR코드로 ‘디지털 형태’로 만든 제품 여권의 실체다. QR코드 링크로 들어가면 해당 제품의 모든 기록이 담겨져 있는 인터넷 화면이 연결되는 구조다.

Scantrust社 배터리 DPP Case study 자료 

그런데 대부분의 상품은 여러 가지 부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상품이 되는데, 각각 부품들도 DPP가 필요하고 완제품도 DPP가 제시돼야 한다. 자동차 생산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각기 다른 제조업체에서 3만개의 부품을 생산해 H사에 납품을 하면 이것들을 조립해 1대의 자동차를 만든다.

그 자동차를 유럽에 수출할 때 ‘디지털 제품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때 H사는 3만개 부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은 하나의 QR코드를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DPP의 도입은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업체들도 DPP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하며, 그러지 못할 때 대기업에서는 해당 완성품의 온전한 DPP를 제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동 운명체로 볼 수 있다. 중소기업의 DPP 대응이 대한민국 전 산업영역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으며,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DPP에 담아야 하는 입력정보

그럼 DPP에 담아야 하는 입력정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입력정보 카테고리는 브랜드, 공급망, 제품정보, 원자재 정보, 취급방법, 순환성, 지속가능성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하위정보기준으로 살펴보면 단품 단위 제품의 재료원산지, 탄소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 PCF), 재활용 원료 비율 등이다(전편 ‘양의 탈을 쓴 이리 CBAM’에서 CFP, Carbon Foot Print로 표기했으나 같은 말이며, PCF로 쓰는 것이 일반적).

이외에 입력해야 할 하위정보가 많이 있으나 위의 3가지가 어려운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탄소발자국이 가장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나도 그렇다. 전편에서 탄소발자국에 대해 일부 다루었는데 ‘탄소량 측정을 위한 데이터는 ISO14067에 따라 PCF를 측정하는 방식’을 준용하면 되는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생산량, 원재료, 가동시간, 전력사용량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독일 IDTA에서 시연한 DPP 제공정보 중에서 PCF(탄소발자국) 서브모델 사진

깜짝 놀랄만한 사실은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기업에서는 이미 이러한 데이터가 실시간 수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탄소량 측정 즉, PCF 결과 값의 상당 부분은 지금이라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원재료의 화학 성분에 따른 탄소량 산출 등 전문영역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특정한 센서나 계산식을 더해서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약간 덧붙이자면, 제품의 전체 생명주기 동안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고 관리하는 기법(생명주기평가, Life Cycle Assessment, LCA)으로 ISO 14067 표준에 기반하고 있으며, 분석은 지정된 제품 또는 서비스 단위, 물류배송까지에 해당하는 총 온실가스 배출량을 CO₂ 환산값으로 표시한다.

이런 내용을 구현해 놓은 것이 독일 전기전자산업협회(ZVEI)의 탄소발자국 컨트롤캐비닛(PCF@Control Cabinet)이다. 2022년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쇼케이스 시연을 통해 전자제품 DPP의 구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나도 현장에서 협회 관계자 및 독일 정부의 안내를 받아 설명을 듣기도 했다.

‘탄소발자국 컨트롤 캐비닛’이란 ZVEI가 지멘스(SIEMENS), ABB 등 16개사에서 생산된 부품을 하나의 캐비닛에 Embedded해 넣어놓고, 캐비닛 문을 닫아 하나의 완성품 QR코드를 생성한다.

독일 하노버 메세 2024 ZVEI 부스

이를 스캔하면 제품의 기본 정보(제품명, 제조업체, 일자, 국가 등)를 확인할 수 있으며 여기에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는 다양한 국가 및 기업의 탄소발자국 정보 및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제품여권(DPP)에 반영해 표시해 준다.

디지털 배터리 여권(DBP, Digital Battery Passport)은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 정보(LCA)를 디지털화해 QR코드로 소비자 및 이해관계자에게 공유하게 되는데, EU에 유통되는 LMT 배터리와 2kWh 이상의 모든 전기차, 산업용 배터리에 대해 배터리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사진=인더스트리뉴스]

EU의 배터리법 발효(2023.8.17 발효) 후 42개월이 경과 한 2027년 2월부터 시행된다. 다른 산업에 우선해 DBP를 해보고 전 산업에 수평 전개하는 목적도 있다. 전편에 적었던 마무리를 조금 수정해 다시 적어본다. DPP는 CBAM보다 더욱 강력한 환경규제일 것이다. DPP의 핵심요소가 탄소발자국이며 이를 계산해서 제시해야 하는 당면과제가 우리 중소기업에게 있다.

특해 배터리 산업에서 OEM 대기업에 부품과 원료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나는 DPP 및 CBAM과 같은 글로벌 환경규제를 ‘스마트팩토리사업’의 확장 개념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단계 중소기업은 CBAM, DPP를 대응하기 위한 제조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기업이다.

EU에서는 원칙적으로 환경대응을 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앞서 언급했지만 MRV(Monitering, Reporting, Verification) 즉 모니터링의무, 보고의무, 검증의무 등으로 한 마디로 디지털 대응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구축 기업은 모든 제조데이터, 장비 및 주변 환경 데이터까지 생산에 관여하는 데이터가 저장되고 있다. 여기 저장된 제조데이터를 활용해 AI 알고리즘을 통해 장비의 예지보전 및 품질확인, 공정간의 연결, 자율생산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한 번 강조하자면 고도화 기업은 모든 제조과정에서 발생되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 것이다.

현재 스마트팩토리는 기초, 중간1, 중간2, 고도화 4단계로 구별해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5단계로 ‘환경대응단계’를 추가로 해 기존 4단계에서 5단계로 확대하면 정부 차원의 대응준비는 완성이 된다. 이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스마트제조혁신의 경험치가 있기에 충분히 가능케 하는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양의 탈을 쓴 이리 번외편

① 공급망 ESG

ESG는 기업경영 활동으로 초래되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실제적·잠재적 부정적 영향에 대해 기업 스스로 식별·예방·완화하고, 책임있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업의 체계적인 리스크관리 시스템이다. 2020년 4월 EU 집행위원회는 여기에 더해 ‘공급망 ESG 실사’ 지침을 발표했다. ESG 관련 인권, 환경 등에 부정적 영향에 관한 조사를 기업 자체 사업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제품 및 서비스 생산 과정에 관여하는 공급망 관련 전체 기업의 준수 의무를 조사하고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미 BMW에서는 ESG 공급망 실사를 통해서 미흡한 협력업체 3년 평균 150개사를 공급망에서 배제시켰으며, GE는 2020년 기준 공급망 71개사를 퇴출시켰다. 그동안은 최종 수출기업만 ESG 리포트를 첨부하면 됐으나, ‘공급망 ESG’는 수출완제품에 포함돼 있는 공급망의 모든 부품사까지 포함하는 ESG 리포트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단순히 ‘공급망’이라는 단어만 하나 더 붙었으나, 의미하는 바는 엄청난 난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② CRMA 핵심원자재법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은 핵심 및 전략 원자재의 역내 생산 확대 및 역외 국가와 원자재 협력에 의한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완화하기 위한 법안으로 탄소중립 이슈를 기반으로 EU 권역 내 제조업 역량 강화 및 재활용 강화 달성이 주요 목적으로 추진된 법안이다.

③ 미국판 CBAM, 공정전환경쟁법

미국의 경우도 EU와 유사한 탄소국경조정부담금 등의 정책과 함께 환경기준 및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만족하지 못한 제품에 대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정전환경쟁법(FAIR Transition and Competition Act), 청정경쟁법(CCA Clean Competi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지속가능한 글로벌 철강 협정 (GSSA Global Sustainable Steel Agreement)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공정전환경쟁법을 좀 살펴보면, 미국 내 기후변화 법규를 준수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면서, 해외오염 배출 국가의 적극적인 배출량 감축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법안이다. 먼저 EU 위원회에서 탄소국경조정세(CBAM) 예고에 따라 이와 유사한 개념의 제도 도입을 목적으로 발의됐으며, 여기서 도달되는 재원으로 대규모 기후변화 인프라 지출 계획 추진키로 했다. 이면에는 해외 오염배출국가로 중국을 타겟팅 하고 있어 그린정책이 그 이면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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