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에 대한 요구 “환경 개선 사업 투자금 사용 내역과 계획 소상히 밝혀야”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영풍이 올해 3분기 적자 전환한 이유로 매년 환경 개선에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어 실적 저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영풍이 사업보고서에서 환경 개선 투자와 관련해 충당부채로 비용 처리한 규모가 667억원인 것으로 밝혀져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영풍이 지난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게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6567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38%(3999억 원) 감소했고, 영업손실 17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공장 가동률도 역대 최저 수준인 53.4%로 떨어지며 경영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풍측은 이에 대해 입장문을 통해 “2021년부터 약 7000억원 규모의 환경 개선 혁신 계획을 수립해 매년 1000억원 이상씩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며 “환경 개선 혁신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는 당연히 수치적으로 보이는 실적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궁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영풍측은 이어 “바꿔 말씀드리면 실적을 포기하고 매년 1000억원씩 투자할 정도로 환경 개선에 진심”이라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 및 주장과는 달리 업계에서는 영풍의 사업보고서 가운데 ‘환경 개선 분야 충당부채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2021년부터 환경 개선 사업에 매년 1000억원 이상씩 투자했다는 근거를 전혀 찾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충당부채란 지출 시기와 규모는 다소 달라질 수 있지만 지출 자체는 확정된 부채를 의미한다. 충당부채를 설정하면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영풍은 2020년에 처음으로 토지 정화와 석포제련소 주변의 하천 복구를 위해 총 608억원의 충당부채를 설정한바 있다.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따지면 최근에 밝힌 시점(2021년)보다 한 해 앞서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금을 책정한 것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환경오염 물질 처리와 지하수 정화·복구 비용이 추가되면서 2021년에 806억원, 2022년에 1036억원, 2023년에 853억원, 올해 1억원의 충당부채를 추가로 설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2020년부터 설정한 환경 개선 분야 충당부채는 총 3305억원으로, 연평균 661억원에 이른다. 과거와 비교해 환경 개선을 위한 충당부채를 지속해서 설정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매년 1000억원 이상’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영풍이 환경 개선 사업에 대한 투자금을 과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올해 영풍이 추가로 설정한 충당부채는 1억원에 불과하다. 환경 개선 사업에 대한 투자 때문에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됐다고 설명하기에는 새롭게 반영된 환경 개선 충당부채 규모가 너무 적어 또다른 의혹이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업계에서는 영풍이 환경 개선을 위해 설정한 충당부채를 실제로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충당부채는 손익을 계산할 때 미리 비용으로 처리하지만, 최초 사용 계획과 달리 사용하지 않으면 수익으로 반영된다. 따라서 충당부채의 실제 사용 여부는 현금흐름표와 대조해야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
영풍은 2020년부터 환경 개선 사업을 위한 충당부채를 설정한 뒤, 이듬해인 2021년부터 집행하기 시작했다. 올해까지 합산 사용액은 약 1077억원으로 연평균 270억원 수준이어서 ‘매년 1000억원 이상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했다’는 영풍의 해명이 과장된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설령 영풍이 2021년부터 늘린 연간 설비투자액(유·무형자산 취득액)의 증가분을 포함하더라도 매년 1000억원 이상씩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풍은 400억원 수준이던 연간 설비투자액을 2021년부터 600억원 수준으로 늘리며, 신규 설비투자로 약 200억원을 추가했다. 다만 영풍의 연평균 충당부채 설정액이 667억원이기에 200억원을 더해도 10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영풍이 환경 개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은 정치권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석포제련소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 8개월간 처리한 제련 잔재물의 비중은 전체 잔재물의 23.7%에 불과하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잔재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려, 내년 말까지 잔재물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말 환경부는 석포제련소에 통합 환경허가를 내주면서 내년 말까지 제련 잔재물을 모두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정확히 짚은 셈이다.
이와 함께 석포제련소는 이달 초 대구지방환경청 수시 점검 때 황산가스 감지기를 끄고 조업을 한 사실이 적발돼 60일 조업 정지에 이어 ‘10일 조업 정지’를 추가로 받을 가능성어 더욱 높아졌다. 석포제련소에 대한 환경 오염 논란이 터질 때마다 영풍이 강조하는 ‘환경 개선 투자 7000억원’이 과연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과장된 것은 아닌지 의혹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은 석포제련소의 환경 오염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환경 개선 사업에 7000억원 투자하고 있다’는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숫자를 거론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면서 “정말 억울하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환경 개선 사업비를 7000억원으로 책정했는지, 매년 어디에 쓰고 있는지, 그 효과는 무엇인지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